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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며느리란 뭔가요?(4)


BY 며느리 싫어 2000-12-06

초상을 당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오후에 친정에서 사무실로 전화가 왔더군요.
팔순이 넘으신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아빠도 출발하셨고, 엄마도 바로 가봐야 하니 어서 들어와서 아이를 시댁에 맡기라고요.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경황없이 업무를 정리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안에서 내내 시댁에 맡길 아이걱정만 앞서더군요.
요리조리 생각하면서 엄마가 상을 치루는 동안 내가 데리고 있으면 안될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친정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내가 한 말은 "엄마 00이를 내가 데리고 있으면 안될까?" 였습니다.
엄마는 "시댁에 맡기면 될일을 참.. "
그러나 엄마는 그간 나와 남편이 아이를 시댁에 맡기는 걸 달가와 하지 않는 눈치인것을 잘 아셨기 때문에 1년 반에 넘도록 정말 악착같이 혼자서 아이를 보셨었습니다.

주말에 내외분이 지방 친지분의 결혼식에 내려가셨다가도 일요일에 올라올 차편이 예약이 안되면, 친척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오셔도 될 일을 미련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나를 위해 새벽2,3시 차라도 잡아타고 올라오시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죽음앞에 숙연해지는 마음 때문인지
"왠만하면 시댁하고 잘 지내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니? " 하시더군요.

나와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갔습니다.
밤늦게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며
"그러그러해서 다음주까지는 아이가 여기 있어야 될 것 같아요" 했더니
시어머님은 대뜸
"다음주에 나 일이 있는데...." 하시더군요.

아니 세상에 일 없어서 아이 봐주는 할머니들이 있던가요?
아무리 훌륭하신 일을 하시러 나가야 하시더라도 상황이 이런 상황이면 아무 말없이 "그래. 걱정말고 잘 다녀오거라" 하시면 그냥 좋았을 것을...
섭섭했지만 워낙에 그런 시어머님이라 또 생각없이 말씀하신 것 뿐이려니 하고 남편과 함께 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할머니 시신앞에서 삼일장을 치루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얼마나 오래 산다고, 얼마나 대단한 인생이라고 이렇게 아웅다옹 거리고 사는가 싶었습니다.

그저 큰 웃음으로 한번 허허 웃으면 그만인 것을...

최근 일년 동안 대소변도 못가리신체 약간의 치매끼에 거동도 못하셔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시다 돌아가신 할머니.
조금 더 오래 사셨더라면 어쩌면 형제간에 의도 상했을지도 모를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돌아가시기 그 일년동안 서로가 불행하셨겠지만, 할머니가 좀 더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실 수 있도록 주변에서 조금 더 배려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거야 어른들의 일이라 말은 못했지만요

올케가 나에게 "남의 일 같지 않아요" 하는 말을 들으며

"민지야(저는 이렇게 이름을 부릅니다)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 함께 기도하며 잘 보살펴 드리며 살면 절대 그런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부모님이 그렇게 되신다면 나는 모든짐을 너에게만 떠 맡기지는 않을거야.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병든 시어머니는 딸이 모셔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병들어 누워계시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며느리가 무슨 정이 있겠니?
오히려 그런 시어머니 보면서 그동안 못되게 굴었던 기억만 떠올라 더 정 떨어진다 하더라.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그래도 딸은 그간의, 엄마와 함께 했던 삶이 있으니까 조금은 더 살갑게 병수발을 들수 있지 않겠니?
솔직히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어도 너보다는 내가 더 오래 얻어 먹었고, 사랑을 받아도 너보다는 내가 더 오래 받아왔는데, 당연히 내가 더 많은 짐을 맡아야지.

먼훗날 혹시라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온다면 나는 절대로 상 당한 후에나 달려와 꺼이꺼이 울어대는 그런 딸은 되지않을거야. 절대로..
우리 함께 노력하자"

토요일.
삼일장을 치루고 시댁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여보.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생활 할 때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애.
누군들 똥오줌 못가리며 짐승처럼 살다가 가고 싶겠어?
한 인생 열심히 살다가 죽음이 임박했을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불쌍한 상태가 되어도, 그간의 열심히 살아온 삶을 생각해서 주변사람들이 조금 더 살갑게, 괴로운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느끼다 돌아가시게끔 도와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왜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오로지 부모님의 손길을 바라게 되잖아. 그 도움이 도대체 언제나 끝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라는 이름의 존재들은 끝없이 아이를 위해 모든것을 희생하려 하잖아.
그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고 이제 홀로 삶을 개척하고 자식도 낳아 키워보고, 그자식에 대해서도 손을 놓아도 될때쯤 되면,

이제 늙으신 우리의 부모들이 다시 아기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게 아닌가 싶어.
그래도, 병들고 똥오줌도 못가리고 꺽꺽대더라도,
부모님이 아기인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셨던 우리 생의 처음 그때처럼, 우리 또한 부모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생의 마지막을 아름다이 마감 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우리 그렇게 살자.
친정부모든 시부모든, 혹시라도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돌아가시게 해드리자.
말은 쉽고 행동이 어려운 거겠지만, 정 힘들면 간병인 쓰면서 함께 보살펴 드리면 되지않을까?
돌아가시는 그길이 두렵지 않도록 말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하며 생활하면 그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듣고있던 남편은
"아유. 우리 흑설이가 아주 큰 거 깨달았구나" 하며 웃더군요.
그러면서 내손을 꼬옥 잡아주었습니다.

그 손길의 의미를 저는 압니다.

"나. 우리 올케 하고도 그런 얘길 나눴어" 하면서 . 올케와 나눈 대화도 얘기해 주었지요. 그러면서

"여보. 우리아가씨들도 아직 젊으니까 함께 맥주라도 마시며, 오늘의 경험과 내가 올케하고 나눈 얘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아마도 내가 병든 시어머니를 딸이 모셔야 한다는 논지를 펴면, 내말의 깊은 뜻은 생각하려 하지도 않고. 저게 병든 시어머니 모시기 싫어 지들한테 얘기하는 거라고들 하겠지?" 했더니

"아유. 정신 나간 것들하고 무슨말을 하겠니?" 하더군요.

장례를 치르고 정화된 마음으로 저녁때쯤 시댁에 도착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방안에서 아버님이 주무시고 계시길래 어머님께
"아버님이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일찍주무시네요. 먼곳으로 출퇴근하시니까 많이 힘드시죠?" 했더니
어머님은 감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거기 그만 둔지가 언젠데, 네 시아버지 지금 노동 하신다" 하시더군요.

올초쯤 아버님이 개인택시를 파셨거든요.
돈도 잘 안벌리니 그거 팔고, 아는 분이 사업하시는 곳에서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는 그간 편하게 일하고 싶으시면 일하시고 놀고 싶으시면 아무때나 노시던 분이 어떻게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을 하시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돈은 그렇게 쉽게 받는 건 줄 아시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연세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하시던 택시일을 계속하시는게 좋을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어른들과 시누이 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택시를 파시고 출근을 하셨었는데, 그것도 얼마만에 그만두신 모양이더라고요.
남편은 알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나에게 설명을 해주더군요.
그러그러해서 지금은 다른일을 하신다고...
아마도 신경이 예민한 내가 또 여러가지 걱정을 하게될까봐 일부러 쉬쉬하면서 내가 모르게 하려고 애썼던가봐요.
남편의 배려였죠.

헌데 저는 어머님의, 마치 '네가 돈을 안줘서 네시아버지가 노동을 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어머님의 말씀에 슬슬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일엔 아예 말상대를 안하는게 나은거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아무 말씀도 여쭙지 않았지요.

토요일이라 아이들 데려가면서 어머니께
"엄마는 아직 할머니댁에 계시는데 삼오제를 지내셔야하기 때문에 월요일까지 계셔야 한대요. 그래서 내일 저녁에 다시 아이를 여기로 데려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언제까지 있을거냐?"
어머님은 아마도 다음주 수요일부터인가 있는 교회행사에 참석하시고 싶어서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월요일 저녁에 엄마랑 통화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에유. 내일 김치 담그려고 했는데..."

속이 상하더군요.
다른 일도 아니고 초상을 당했는데, 어차피 봐주실 거 말씀이라도 다정하게 하시며 봐주시면 도저히 안되는 건가요?
섭섭한 마음을 감추며 아이들 데리고 나오는데 안방에서 주무시는 줄만 알았던 아버님이
"니에미 아프니까 빨리 데려가라" 하고 소리치시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아이를 내가 보고 있는데 여차여차해서 시댁에 맡겼더니 아버님이 그런식으로 말씀을 하셨다면 '뭐 그런 말씀 하실수도 있겠지' 하겠자만,
그동안 친정엄마가 보셨는데 상을 당해 몸살 나실 안사돈은 생각도 안하고 당신 마나님만 힘들고 아프다고 걱정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에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더군요.

물론 아무 것도 아닌 일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그간의 쌓인 감정이 많은데다가, 아버님, 어머님이 어차피 봐주실 거면서도 왜 저렇게 말끝마다 감정을 싫어서 말씀하시는지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이지요.

왜겠어요?
돈을 안드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안돼. 나는 도저히 안되는거야.
아무리 착하고 이쁜 며느리가 되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이렇게 와서 막상 얼굴을 대하면 이런 일만 생기는 걸..
나는 안돼, 도저히 안돼...

저 또한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서 맡기는 거 아닙니다.
어느 엄마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어하겠습니까?
솔직히 친정에서 아이 보신지 한달쯤 지나 시댁에서 돈 때문에 그 아우성이 일어난지 며칠 안되어
마침 엄마가 일이 있어서 월, 화 이틀을 아이를 보실수가 없게 되었었습니다

막막하더군요.
남편과도 의논했지만 남편도 입밖으로 말은 안했지만 자시도 내심 시댁에 맡기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다 알아봤지요.
하루에 일당 십만원씩을 주고라도 이틀을 맡기려고 했지만 그것도 거리나 제 출퇴근시간 등등이 맞질않아 할 수가 없었어요.
미친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아파트 근처의 아는 사람에게 이틀을 맞겼습니다.

못 할 짓이더군요.

시댁이나 친정이었다면 잘 떨어졌을 아이가 ,모르는 곳에 맞겨두고 뒤돌아서는 나를 보고는 얼마나 아프게 울어대는지...
첫날 새벽엔 엄마와 함께 유모차 타고 나간다는 기쁨에 자는 애를 깨워도 방글거리며 벌떡 일어나더니만,
둘째날엔 어제와 똑같은 그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에 오자 벌써부터 앙앙대며 엄마만 찾더군요.
그래도 차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해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시어머님이 밉더군요.
오죽했으면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겠어요?

그리고나서 친정에 가선 마치 시어머님이 지극정성으로 잘 봐주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죠.
그러나 원체 거짓말을 못하는 남편의 말실수로 엄마도 대충 어떻게 지냈는지 눈치를 체시곤 그다음부턴, 밖에 안나가면 안나가셨지 절대로 시댁에 맡기라는 말씀은 안하시더군요.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 싫어서 이번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시댁에 맡겼던건데.....

월요일.

저녁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이 다 상하고, 피곤에 지친 목소리로 엄마가 받으시더군요.
목이 상해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엄마. 많이 힘들었지?"
"으어. 그래 0서방과 너도 몸살났겠구나"
"으응.. (저도 참 죽일년이죠). 근데 엄마 00이는 언제 데려가면 좋을까?"
"글쎄.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내일, 모레 쉬게 수요일 저녁에 데려왔으면 좋겠는데...."
"........"
"왜? 사돈어른 많이 편찮으시니?"
순간 복잡한 심정에 나도 모르게
"시댁에선 빨리 데려갔으면 하던데" 하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한숨을 쉬시며
"에유. 그래. 그럼 내일 저녁에 데려와라"

전화를 끊으며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더 군요.
화가 났어요.
정말 화가 났어요.

도대체 누구 손주야?
누구손주를 지금 누가 봐주고 계시는데 그런식으로 말씀 하시는거야?

작은 일이지만 이런 작은 일들을 통해서 저는 지난 묵은 감정들이 폭발하고 마는 거지요.

계속 가까이 지내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과 이렇게 항상 악감정이 생기는 것도 너무나 괴롭습니다.
아시겠어요?
이런 제 심정을 ?

조금 더 잘 지내고 싶은데,
조금 더 살갑게 잘 해 드리고 싶은데
왜 큰 맘 먹고 전화를 해도 그냥 반갑게 받아주시면 나도 모든 마음이 누그러 질 텐데 뾰족한 음성으로
'네가 왠일이냐 전화를 다하고?" 하시는 우리 시어머니

돈을 드리면 해결이 될까요?
아니요. 경험으로 알지요.
매달 얼마씩 드리면 그건 평생 죽을때까지 나에게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거고, 사소한 일이 생기면 그건 또 다른 일이니 그또한 당연히 내가 해드려야 하는걸요 생각을 하시더군요.

내 상황이야 어떻든.
그럴때 돈을 안내놓으면 또 괘씸하게 생각하시고, 말 한마디, 눈길 하나도 싸늘하게 대하시죠.
만약 sunny 님처럼 제가 매달 백만원씩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시댁에선 아마 그렇게 큰 돈을 갚아 나가면서 그중의 일부인 몇십만원도 안준다며 괘씸하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나요?
어제도 텔레비젼의 어느 프로에서 경기가 어려워져 아이를 보육원에 맞기고 일주일이나, 한달만에 만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의 이런 상황이, 결혼 할 때 시부모님이 제대로 못해주셔서 그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도 되었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 시어른들은 당신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게 마치 내가 돈을 안드려서 그런것 처럼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여유롭게 사셨다고요?
평생을 그렇게 근근히 살아오셨는데,
며느리봤다고 하루 아침에 그 인생이 갑자기 부유한 삶으로 급상승 해야한 하는 건가요?

답답합니다.
답답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