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94

도대체<며느리>가 뭔가요?(5)


BY 며느리 싫어 2000-12-06

그 월요일.
내일 하루 엄마를 더 쉬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과, 그러그러한 상황을 또 시어머님께 구구절절 설명해 드려야 하지만 또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거라는 걱정....
아니, 며느리가 미우면 어린 손주도 밉다던데, 혹시라도 아이가 해꼬지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너무 심한 기우일까요? 그래도 당신 핏줄인데..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안그래도 조심성이 없는 집안이라 시댁에만 가면 뜨거운 물에 데고, 시어미니가 데리고 나갔다가 애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뛰어 들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당신 가시고 싶은곳에도 못가셔서 심술난 마음에 대충 신경 안쓰시다가 아이만 또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리곤 시어머님이 "그러게, 내가 아파서 애 못본다고 했잖니?" 한마디 하시면 저는 정말 할 말이 없는거잖아요?

그러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켠에는 우리 엄마는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시고도 말씀 한마디 안하시는데, 겨우 며칠 애 보시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러시나 하는 원망과 괘씸한 생각에 일부러라도 더 아이를 보게 하고 말겠다는 심술도 생기고......

그렇게 복잡복잡한 갈등을 하면 할 수록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하더군요.
바로 그때부터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 거지요.

이게 뭐야?

시부모님이라고 계시지만 결혼해서 부터 이날 이때까지 부모로써 또 하나의 딸인 나에게 해주신게 뭐가 있는데?
도대체 뭐가 부모야?
부모로써 하나 해주시기는 커녕, 그저 때만되면 어떻게든 나에게서 한푼이라도 더 얻어낼 궁리만 하셨지. 나를 위해 해주신 게 뭐가 있다고?

결혼 할 때도 나에게 그렇게 독하게 말씀하시곤, 그렇게 당당하게 나더러 맞벌이 하라고 당신이 직접 말씀하셨으니, 아이는 당연히 당신이 봐주시겠다 할 줄 알았었지요.
헌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네 친정엄마 아직 젊으니까, 친정엄마에게 맡겨라" 하시더군요.

아니 친정엄마가 젊으신게 어디 시어머니 편하게 아이나 봐주려고 젊으신 건가요?
당신이 하기 싫으면 안하겠다 하시면 그만이지,
뻑하면 친정,친정 운운하는 게 정말이지 노엽더군요.
당신이 필요할 때만 "너도 내자식이지" 하셨지.
궂은 일만 생기면"친정엄마 불러다 해라" 하시는 게,
그런게 시어머니인가요?

어쨌든 어떠한 열 받고 이가 득득갈리는 과정이 있었든간에,
결과적으로 어머님이 아이를 보시게 되면서 부터는, 저는 정말 모든 걸 고맙고 감사하게만 생각했어요.
물론 그 몇개월간 아이를 보시면서도 한달 내내 혼자서 아이를 보신적은 절대로 없지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한달에 2~3일은 친정에 맡기게 하시더군요.
그래도 친정엄마는 '사돈어른이 애 보시는데 한달에 고작 며칠, 내가 못봐주겠니?' 하시더군요.
어떤 때는 시어머니 동창회 가신다고 아이를 맡겨야 한다기에,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마침 엄마도 그날 동창회가 있다시는 거예요.
그래도 매일 아이보시는 시어머님이 먼저라시며 엄마는 말없이 아이를 봐주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이 힘들게 아이를 봐주신다는 게 너무나 고마워서 저는 남편에게 여름휴가에 한 100만원 정도 드려서 여행을 보내 드리자는 제안도 했었죠.
그때도 물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빚정리 되고, 내가 막상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그때는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시어른들 여행 보내 드리기가 그리 쉽겠느냐고,
나중에도 물론 잘 해 드려야겠지만, 우선 지금 내가 벌 수 있을 때 보내드리고 싶다고,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젊은 우리가 빚 갚는 거 한달 미룬다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남편은 물론 대단히 고마워 했었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여행사에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어머님이 천식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어요.
원래 눈물이 많은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어머님은 병원에 입원하시고 식구들이 시댁에서 저녁을 먹는데 저는 목이 메어 밥이 안넘어 가더군요.
여태 고생하셨는데, 이제 조금 즐겁게 해드리려고 했더니 병이 나셨다고, 저러다 못일어나셔서 앞으로 아버님과 여행도 못가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남편은 물론 아버님도 계셨고 시누이도 있었지요.

내 아이를 보느라 너무나 힘이 드셔서 병이 나신 거라는 생각에, 저는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해 퇴근을 하곤 하루건너 한번씩 병원에 들러서 이것저것 살펴드리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지요.
병원에서도 어머님이 기침을 심하게 하시며 힘들어 하실땐 내가 더 가슴이 아파서 어머님 등을 쓸어 드리며 울었어요.
"어머니 죄송해요. 우리 애기 때문에 이렇게 병 드시게 해서...." 하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병원에선 제가 딸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어떻게든 낫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점심시간만 되면 한의원이든 약국이든 여기저기 ?아다니면서 방법을 알려고 노력했지요.
그렇게 꼭 일주일이 되어가던 금요일날 저녁.
그날도 퇴근을 하고 병원에 갔더니, 아버님이 일찍 와 계시더군요.

막 병실에 들어서서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에 아버님이
"자. 이만큼 나왔다" 하면서 종이 한장을 제 무릎으로 탁 던지더군요.
병원비 영수증 이었죠.
일주일에 한번씩 중간 결산을 해주는 병원이었는데, 이런저런 특별한 검사 때문에 40만원 정도가 나와있더군요.

그순간 제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리기 시작했어요.
역시 딸이 아닌 며느리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어머님 때문에 발동동 구르며 뛰어 다녔는데, 아버님의 그 말 한마디에 싸늘하게 식어버리더군요.

어머니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내 월급날은 다가왔지만 아직 아무 얘기가 없자 알아서 살피라고 던지시는 거겠죠.
그렇지만 내가 화가 났던 건 말예요.
병원비가 400만원이 나온것도 아니고 4천만원이 나온것도 아니고, 고작 40만원인데, 남편인 시아버지는 손놓고 있고, 오히려 며느리인 나에게 내라고 지금 이런 행동을 하신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부터 차곡차곡 내가슴에 쌓여 있던 분노들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삭히며 이쁜 것만 보려고, 내아이 웃음으로 그 모든 더러운 감정들은 덮으며 예쁘게만 살려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으며 노력해 왔지만
시아버지의 바로 이런 행동들 앞에선 나도 다시 옛날의 상처받은 그 감정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거지요.

그래 좋아.
더럽게 재수없는 집안이라 그깟 40만원도 없어서 벌벌기는 상황이었다고 쳐.
그래도 아버님이 그렇게 처신해서는 안되는거 아닌가요?
차라리 조용히 불러서 여차여차해서 형편이 안되니 너희가 좀 도와줘야 겠다 하셨으면 기분은 더럽더라도 어쩌겠어요?
못이기는 척 해드리고 한번 씩씩거리고 끝냈을거야.

그렇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아버님도 택시운전을 하고 계셨고, 그때는 둘째도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
내가 시누이라면 올케언니 보기 민망해서라도 내가 해주고 말았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에는 어땠는지 아세요?
결혼해서 겨울에 시댁에 갔더니 어머님이 기침을 심하게 하시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며느리로써 어떻게 해야 겠어요? 저는
"어머니. 기침 심하게 하시는데 감기가 오려나 봐요.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이라도 가보세요" 했지요.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 왈

"병원비가 있어야 병원을 가지"

참. 그놈의 병원비가 2만원을 하겠어요? 3만원을 하겠어요?

남편도 있고, 말만한 딸도 지켜보고있는 앞에서 며느리에게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면, 결국 당신 남편이랑 딸년 망신시키는거 밖에 더 되겠어요?
그런데 그런 걸 전혀 모르시더군요.
오로지 나에게서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사에 그런식 이셨죠.

대충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요.
물론 오면서 욕을 욕을 했고요.
그래도 혹시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도 이상한 일만 겪으니까, 이제는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사정 다 아는 회사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차여차했는데 내가 알아서 병원비 먼저 안 해 드린 게 그렇게 괘씸한 거냐고 물었죠.

언니는 흥분하여

"그래. 잘낫다. 너 집 팔고 차 팔아서 시어머니 병원비 다 해드려랴.
응? 다 해 드려"하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얼마나 잘난 집안 이니? 그래 남편이 없어? 딸년이 없어? 으이그. 그 그지같은 집구석. 정말... 내가 너 그래서 결혼하지 말라고 그랬었잖아"

씩씩거리는 언니의 전화를 끊으며 괜시리 전화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순간부터 시댁에 대한 제 정성은 한풀 꺽이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퇴원을 하셨다가 또 얼마가 지나고 어머닌 다시 입원하시고, 퇴원하시길 반복 하셨죠.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천식이 원래 그런 거래요.
한번 걸리면 죽을 때까지 기침하며 사시는 거고, 멀쩡하게 생활하다가도 한순간 심해지면 다시 한번 병원에 잠깐 입원했다 나오고,
그것외에는 약도 없는 병이라고,,,

그래도 몇달이 흐르고 아이문제가 친정어머니 덕분에 해결이 되자, 저는 다시 시댁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운 감정이 생기더군요.
여기 저기 수소문 해 보고, 알아본 결과 00에 있는 모병원이 천식에 전문이라는 소식을 듣곤, 남편에게 병원을 한번 옮기시게 하는게 어떨까 하는 의논을 했지요.
시댁에선 병원 옮기면 또 검사비 등이 들 것을 걱정 하시겠지만 그래도 병은 여기저기 알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그곳이 전문이라던데.. 하면서.
마침 월급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은행 잔고는 한푼도 없었지만, 저는 남편에게 얘기하고 10만원을 현금써비스를 받아서 어머님께 드렸었죠.
병원도 예약해 드리고.

병원에 다녀오시던 날 저녁에, 궁금한 마음에 시댁으로 전화를 드렸어요.

"어머니. 진찰 잘 받으셨어요?"
"못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아니. 왜요?"
"야. 10만원 갖고는 택도 없더라. 검사하는데 20만원 이래"

순간 맥이 탁 풀리더군요.
물론 저도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 할 줄은 몰랐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버님과 함께 가셨다면서
그래. 돈 십만원이 없어서 못하고 오셨다고 며느리에게 말씀하시는건가 지금?
아니 며느리도 현금써비스 받아서 드렸는데, 남편인 시아버지와 딸이 함께 모으면 그돈 십만원이 안모여서 그냥 오셨다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거야?

정말 너무너무 화가나서 수화기를 잡은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어쩌면 이러실까?
정말. 어쩌면 이렇게도 염치가 없으시지?
그러니까 지금. 그 돈 10만원도 나더러 해 내 라고 이러시는 거잖아.

결국 대충 전화를 끊고 말았죠.
항상 이런식인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지혜로운 걸까요?

결국 그렇게 그렇게 내 속 다 썩이고, 힘들고 궂은 일은 친정엄마에게 다 맞긴체,
당신은 친구분들과 가고 싶은 곳 다 가시고,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면서,

시누이도 직장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버릇이 어디 가나요?
몇개월만에 또 2개월을 놀더군요.
그리곤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큰딸도 또 어디 좋은데 일주일씩 여행을 다녀오고..

남편이 하도 한심한지"니들 세월 좋다" 했더니만 둘째 시누이는
"아유. 내가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해서 한번 다녀왔어"하더군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은 미친년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평생을 그렇게 사시겠지요.
맨날 죽는소리 하시면서도 당신들 하고 싶은대로 다 하시고,
시누이들도 내게 싹아지 없는 소리들이나 해 대면서, 베짱이처럼 돈 없으면 잠깐 일하다가 돈 있으면 또 놀면서 여행하고 어쩌고....
네.
다 좋아요.
어차피 지들 인생이니까요.

우리요?

우린 물론 잘 살 거예요.
남편도 저도 서로를 끔찍히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 추운겨울.
우리의 경제상황 또한 꽁꽁 얼어 붙었을 때도 우린 절대로 남의 탓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앞으로 믿을 건 우리의 실력 밖에 없다는 생각에,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외국어 학원을 다니며 어학을 공부했지요.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힘들고 지치고 하루종일 잠이 덜께 헤롱거리면서도
서로를 좀 더 편안하게 못 해 주는 것을 안타까와하면서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우린 정말 잘 살 거예요.

이제 남편도 직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빚은 세월이 흐르면 갚아질 겁니다.
그리고 아이도 물론 누구보다 잘 키울 거구요.
나를 닮아 영특 하다며(친정 엄마는 다 그렇잖아요), 어쩜 그렇게 너 어렸을 때랑 똑같으냐며 손주를 물고 빨며 사시는 우리엄마.

한글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못해 고민하다, 제가 서점에서 책을 사서 매주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합니다.
아이를 위해 책을 사고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또 그 계획표를 벽에 붙여 놓으면 가슴이 뿌듯 해 지지요.
어떤 교육이든 간에 아이와 엄마가 함게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주말의 그 행복한 <이틀> 을 위해 저는 일주일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의 밝은 웃음을 기다리며 빈방에 홀로 있는 인형을 어루만지고,
아이가 만지작거렸던 장난감에 입 맞추지요.
자식은 자라면서 한번 웃는 그 웃음으로, 부모에게 보상을 다 해주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방긋 웃는 그 웃음으로,
찡긋거리는 그 눈짓으로 말예요.
자식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그 이상 가는 보상이 세상에 어디있겠어요?

자라면서 이쁜짓하는 자식을 보며 느끼는 부모의 행복감.
그것으로 부모는 충분히 자식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꼭 돈을 갖다 드려야 자식으로서의 보상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말이예요.
원래가 저는 끝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려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 이 악물로 악착같이 고생하면서 우리의 삶을 좀 더 부유하고 풍요롭게 만들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

저는 <노.력.> 하니까요

그래서 잘 살게 되면..
그렇게 이 악물고.
입에서 피 흘리고, 코에서 피 흘리며 살아서

우리 상황이 좋아지게 되면.

평생을 내 덕은 안 볼 것 처럼,
나에게 못되고 독하게만 굴던 시부모라는 존재,
또 불편한 시누이가 지하 전세방에서 빌빌거리고 살게된다면?
단지 나의 시부모 이고, 시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다 거둬야 하는 건가요?

자업자득인 인생을?
인과응보인 인생을?

차라리 그때쯤 나도, 지하 전세방에서나 살면 아무일이 없을텐데
단지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부유하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시부모와 병든시누이를 돌보지 않는 못된 며느리라고 손가락질일 받아야 하는 건가요?

그동안의 내 가슴에 든 피멍은 어쩌구요?

그런데도.
그때가 되면
내가 <며느리>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그 짐을 다 져냐 하는 건가요?

분합니다.
억울합니다.
지금 이상태로 계속 간다면
우리 관계는 남남보다도 더 못한 관계나 마찮가지 인 걸요.

배불러 임신해서 회사에 다닐 때도 매달 돈을 안드려서인지 어머님은 단 한번도 "너 힘들지?" 라는 따스한 말씀 한번 안하셨습니다
오히려 아파트 근처의 아줌마들이 더 안쓰럽게 바라보셨죠.

저도 노력 많이 했어요.

내가 못된거라며.
마음을 다스리려 서점에 가서 인간관게에 관한 책들만 잔뜩 사와서는
<머피의 법칙>에 따라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상상하자.
어머님도 나에게 잘하게 되실거야.
사랑하게 되실거야.
싫은 사람일수록 매일매일 더더욱 축복 해 주라잖아?
그래. 그렇게 하자.
잘 될거야 어쩌구 저쩌구..
중얼중얼...

그러다 시댁에 한번 다녀오면
으유. 내가 미친년이지. 도대체 이짓을 왜하나 싶은 거죠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착한 척은...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또 다시 성경을 꺼내 읽으며
'사랑은 오래참고 어쩌고 저쩌고...,
다시 한번 마음을 정화시키려 노력하지만
그러다 심호흡 한번하고 시댁에 전화한번 하고는
또다시
와르르...

그런데.
일생을 나를 위해 희생하고 고생하는 분은 따로 계시는데
그 은덕으로 내가 잘먹고 잘 살게 되면,
나중에 시어머니를 모시라고요?

왜요?

평생을 친정엄마 고생만 시키고 이것저것 뜯어만 오면서,
호강은 시어머니께 시켜 드리라구요?

왜요?

<며느리> 니까?

화가 납니다.
정말 말도 안되지 않아요?

여러분들의 말씀처럼 그 2천만원 사건 이후 솔직히, 저도 너무 노여워서 집 팔아서 시댁에 돈 던져 줘 버리고, 친정으로 들어 갈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안보고 살거라는 생각도.

그러나.....

또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순 없겠더라고요
00 0씨 집안이라며 체면과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부모님의 가슴에 또 다시 못을 박을 순 없겠다는 생각.

또 그렇게 독하게 불편하게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 등등..

허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대체 뭐가 시부모예요?

결혼하면 부모가 둘이 된다던데
한쪽 부모한테선 계속 퍼와서
다른쪽 부모에게 계속 갖다 바쳐야 하는 거
그게 <결혼> 인가요?

이를 득득 갈면서 밤 12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며 남편에게 엄마와 통화한 내용을 전하다, 그만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아파서 애도 못보시는 거라면 누워계셔야 하느거 아니니?
왜 멀쩡하게 당신 하고 싶은 거는 다 하시면서, 애만 데려가면 아프시대?
내가 갈 때 마다, 어머니 아프다며 시누이들은 호들갑인데, 그래도 전화해보면 어머닌 설겆이 하고 계시고, 시누이는 앉아서 테레비젼 보면서 전화나 받고 있더라.
그래. 아프시다면서도 삼십 먹은 딸년들, 밥상은 잘 도 차려 주시지.
그런데도 만약 나와 함께 살아서 내가 그렇게 밥상받고 있었으면, 병든 시어머니 부려먹는 나쁜년이라고들 하겠지?
도대체 왜?
왜 그래야 하는데?
평생 우리엄마 고생만 시키고 살텐데, 나중엔 당신이 장남이고 내가 며느리라고 시어머니 모시고 살아야 아는 거야?
왜? 뭐가 부보야?
당신들이 나에게 부모 노릇 해 준 게 뭐가 있다구?
억울해. 너무 억울해"

내가 흥분하면서 펄펄 뛰었더니 남편은 더욱 커다란 목소리로

"누가 모시고 산대?
누가?
누구맘대로?
나는 뭐 벨도 없는줄 아니?'

"그래. 평생 친정엄마 고생시켰으면, 친정엄마 모시고 살아햐 하는거 아니니?"

"당연하지. 당연하지, 당연하지 으이---유 정말"
하면서 베란다에 뛰어나가 담배만 뻑뻑 피워대더군요.

남편의 말이 진심이든 거짓이든.
우리를 이런 갈등속에 몰아넣는 시부모가 너무나 밉습니다.

다음날 오후
남편이 회사로 전화를 했더군요.
시댁에 전화했다고.
아이는 내일 수요일에 데리고 가면 된다고.

그러면서
"그리고 너. 앞으로 옆에서 누가 뭐라고 지껄이든 하나도 신경쓰지마. 알겠니? 먹을 거 잘 챙겨먹고 건강해야 해. 알았지?"

이런 남편을.
나이드신 분들은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을 하실까요?

남편도 결혼전부터 집안의 여러가지 모순을 고치려고 무척 노력을 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처음 1년 동안은 쨍쨍거리는 시댁의 세여자들 얘기만 듣고, 시누이들 핸드폰번호를 기억했다가 자주 전화를 해주라는 둥, 일요일에 밥상을 차려서 시댁식구들을 초대하라 어쩌고 하면서 자기식구 들 편만 들어서 얼마나 많이 싸웠었는데요. (그때 두 시누이가 집안에서 판판이 노니까 심심하셨던가 봐요. 그러니 배불러 회사 다니는 제가 재롱이라도 떨어서 심심한 그 마음들을 기쁘시게 해 드리라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2천만원 사건 이후 많이 마음이 상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저랑 통화한 다음날도, 자기 동생이라고 시동생을 불러 내서 점심을 사주고 그러더군요.
그런 게 가족이라는 거잖아요.

어쨌든 그 일들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그래도 이제 시댁에 가야할 날이 다가오니 저는 또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남들은 그런면 어치피 일을 하니까 힘들다는 핑계로, 매달 찾아뵙지말고 서너달에 한번씩이나 가다가, 좀 더시간이 지나면 명절에나 찾아뵈라고 하지만, 제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또 무슨 포악을 떨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똥이 더러우니까 피한다지요
저는 더이상 더러운 상황속에 빠지기 싫어서, 그냥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찾아뵙니다.
며느리 앞에서도 돈문제로 제 남편에게 이새끼 저새끼 하시는 시어른들이 저에겐 안그러시겠어요?

그러나 전 그런상황까지가면 절대로 그냥은 못 넘길것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말대꾸에 큰소리가 나오고 싸움이 커져서 서먹해지면
남들은 며느리만 싹아지 없다고 하지않겠어요?
꼭 남들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어쨌든 싸우고 불편해지는게 싫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미움을 담아두면 제마음만 더 괴로워 지더군요.

그래도 오늘 <며느리>라는 이 이름은
정말 더럽게 웃기는 군요.

도대체 <며느리> 가 뭡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