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95

사람 노릇하기가


BY 들국화 2001-03-27

난, 봄이 싫다. 우리 엄마 생신이 있고, 우리 아버지 산소 벌초도
해야하는 봄이 싫다. 아무도, 아는체를 안한다. 모두다 하기 싫은것이란걸 말 안해도 안다. 그리고, 하자고 하면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입 다물고 그냥 그냥 넘기고 싶은데 그래도 체면은 있어서 그냥 넘기질 않고 꼭 한번은 치루고 넘어간다. 아가씨 국이나 끓여놔요. 제발 잊어주기나하면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나고 말텐데.
난, 하는것없이 수선만 피웠나, 하루종일 힘들여 차렸다고 차렸는데,
잘난 며느리 눈엔 한것이 없단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저냥 살다보니 내가 엄마 모시고 살게된것이다. 아무도 안 모시려고 해서.. 남보기엔 효녀다. 그 효녀 노릇에 내 속은 온통 검정숯인데 다른 형제가 차라리 없었으면 할때가 하루에도 서너번 시댁 보기에도, 남편보기에도 정말이지 낯이 없다.
얼마나 비웃을까. 잘낫다고 이름만대면 알수 있는 사람이 오빠다. 한다하는 명사가 올캐다. 모두다 그럴듯하게 변명하겠지. 아가씨가 변변치 못해서 어머니가 데리고 있다고. 사실이 그러기나 하면 화가 덜 치밀텐데. 가지고 계신 엄마 부동산을 무기로 나중에 아가씨준다고 생색을내니, 나도 집있고 내남편 직장있으니 안가져도 좋으니 잘난체좀 말고 너나 갖고 부모께 잘해라 소리치고 싶지만, 언제나 우리는 웃고 사이좋은 형제들이다. 우애가 넘치는 가족 , 성묘간다고
야단 법석일 생각에 진저리가 난다. 벌초하는일을 누가 할 것인가,
차라리 사람사서 하면 될것을 그런건 왜 안하는지. 꼭 직접해야 한다나 어쩌나, 그러면서 사람이 없단다. 바쁘고, 막일 못하고, 하고나면 병나고 다음날 중요한 회의에 세미나에. 등등등으로 이럴때 내어린
자식이 원망스럽다. 어서 어서 자라서 엄마랑 아빠랑 같이 해도
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구름이 잔뜩 낀 오늘 날씨 만큼이나
산다는건 정말 어려운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