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43

차남은 딸보다 못하나요? (2)


BY 707497 2002-04-04

남편의 퇴근으로 글을 잠시 멈추었어요.
제일 처음 응답해 주신분의 말씀에 동의해요.

- 계속 -

동서가 아들을 낳기전,
둘째아이의 유산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죠.
입덧으로 엉망인 저희 세식구 아니 네식구는 시부의 생신날 속옷을 사서 시댁에 갔어요. 간만에 큰시누내외와 큰동서내외가 밤11시가 되었는데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희 왔어요." 들어서자마자 시부가
무릎 꿇고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젖을 뗀지 얼마 안되는 10개월
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는 남편과 시부, 저는 삼각형의 형태로
앉아 있었고 다른 식구들은 문을 닫고 나가더군요.
그때 갑자기 날라 오던 시부의 주먹은 남편의 머리를 마구 때렸고 놀랐지만 어릴때 경험이 있어서인지 가슴만 쿵쿵 울리더군요.
무덤덤하게 앉아 있으려니 더욱 심하게 남편을 구타하더군요.
아이는 물론 놀라 자지러 지게 아빠무릅에서 우유를 먹다말고
울더군요. 그래도 저희부부는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죠.
그러기를 20여분. 끄떡도 않는 저희부부의 구세주처럼 시모가 뛰어 들어 왔죠. "얼른 잘못했다고 빌어라. 얼른!" 그때 전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에요.
5분을 더 있다가 다구치는 시부모께 "죄송합니다." 그 후로는 집에
올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상황종결이 되고 시부가 "꼴도 보기 싫다, 다른 방으로 가랏!"
남편은 그제서야 분했던지 건너 방으로 가서는 미닫이 문을 닫고
씩씩거리며 집에 가자고 하더군요. 저는 아이를 안고 묵묵히 이야기 했어요. "지금가면 다시는 부모님 얼굴 보지 안을 자신있어?"
남편 "안보면 되지,뭘" 기다렸다는 듯이 큰시누가 남편을 데리고
나가더군요. 밥상을 차려와 제희 네식구에게 내미는 시모,큰동서.
사온 속옷셋트를 시모와 시부, 동서가 있는데서 내밀고는 남편을 기 다렸어요. 시부 왈 "얼른 밥먹어라, 아범을 오겠지.!"
선물을 풀어보지 못하는 시부께서는 시모께 풀어보라며 낯을 못 드시더군요. 텔레비젼만 보고는. 동서는 무엇인가 싶어서 관심어린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으며 "아버님이 풀러보세요!" 시모가 눈치껏 풀어보
시더군요. 여름 속옷셋트 2벌이였죠. 좋아 하시더군요. 시모만.
시부는 껄끄럽게..... 남편을 데릴러 밖으로 나갔죠. 큰시누와 우리
차에서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뒷자석에서는 시아줌가 경청을 하고.
내모습에 놀란 시아줌은 얼른 나오면서 "제수씨 들어갑시다"
저는 남편에게 얼른 오라며 계속 서있었고 큰시누는 들어갈 테니 먼저 가라며.... 기다리다 남편의 등장으로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니 저희부부만 빼고. 남편회사에 제출할 레포트를 작성해야 했거든요. 독수리 타법인 남편은 컴퓨터가 없는 집에서는 안되서 본가에 있는 것으로 제가 타이프를 치고 남편은 옆에서 불러주고.
새벽 4시경에 잠이 들었죠. 이름만 잠이였죠. 밤새 멍하게 천장만
보았어요. 다음날 누워있는 남편은 끙끙 앓는 소리를 했어요.
머리를 만져보니 성한데 없이 혹이나고 멍이 있더군요. 몸에는.
너무 속상했어요. 말할수 없이. 시부모 역시 편한 잠자리는 아니였을것입니다. 큰동서 내외는 시끄러운 상황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간다며 온식구들이 배웅을 나갔죠. 물론 저도. (나오지 마라는 남편을 무시하고) 기세당당한 개선 장군같은 시아줌은 식구들을 전부 한번씩
안아보고 대통령처럼 유유히 갔어요. 제수를 안으려는 시아줌을 전 피했어요. 황당해서.
여기까지예요.
맞은 이유는 시부모께 결혼 2년만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기때문이예요. 차별적인 큰아들과 작은아들, 동서네 집에 대한 의문제기, 큰며느리의 바르지 못한 횡포와 행동들에 대해서. 항상 시골에 다녀오면 부부싸움의 근원이 되었죠. 그래서 시부모에게 처음으로 이야기 했어요. 이혼한다며 작은 아들이 전화를 해서 새벽3시에 집으로 오셨더군요. 결혼하면서 부터 "큰며느리 한테 늙어 구박받아 이사람아."
"큰애 할때 이만큼 밖에 안했으니까 너도 이만큼만!"
하지만 결과는 한복이며 결혼식이며 차이가 낫죠. 큰아들은 고급으로. 저희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당신들 핏줄인 손주들 한테도 항상 차이가 낫죠. 우리 아이는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해요. 지금까지도.
시골에 다녀온후 전혀 먹지도 못하고 돐배기 아기는 바쁜 아빠로만 만족해야 했어요. 돌볼사람이 없었거든요. 겨우 기저귀만 갈아주고 우유만 타주었죠. 제가 기어다니며. 한달가까이 ....
유산이 되었어요. 급히 친모가 오셨고 입덧이 2주일부터 시작한
터라 지처 있는 절보고 놀라 우셨어요.
차차 조리한후 그간 있었던 상황을 말씀드렸고 그후는 상상이
가시죠. 시댁에서는 남편과 통화후 알게 되었고 시아줌이 어떻게 알았는지 왜 유산 됐냐며 이유를 알때까지 계속 전화가 오더군요.
남편이 속상해 이야기 했어요. 시골에서 충격받아 그렇다고.
우리 네식구는 세식구가 되었고 친모는 20여일 조리후 가시고 상처만 남았죠. 시댁은 당신네들 뜻대로 딸,부모가 보태서 산 집,결혼과 동시에 멀쩡한 차를 사백만원을 주고 바꾼차, 어린시절 항상 동생에
게 뒤떨어지는 형의 열등감, 결혼반대, 결혼후 사는모습의 차이 등에서 벗어나 큰아들,큰며느리가 집안의 기둥으로 자리잡았죠.
적어도 본가에서 만큼은.
참고로 시누둘과 큰아줌은 전문대를 졸업했고, 남편만 4년대학을 졸업했어요. 결혼전에는 문제가 안되었는데 후에는 문제가 되더군요.
여러가지 충격으로 전화 노이로제가 생겨 우울증이 되어
자살기도도 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구정에 언제 올거냐는 시부모의
전화를 받고 돐때 찌그러진 반지사건과 형수의 인연끊기행동들을
시부에게 남편이 이야기 했고 너무한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구정에 안간다고 하니 시부 왈 "IMF시대에 그것도 감지덕지하지 뭘그러냐?"
찌그러져 돌아온 반지를 그런식으로 이야기 하더군요.
큰아줌에게 부탁한 카메라는 모두 엉망으로. 시부와 차남의 손자가 함께 찍은 사진은 장남의 손녀가 머리끄댕이 잡혀 찍히고, 조카딸의
머리와 손발이 모든 사진에 찍혔죠. 아무도 못말렸죠. 그러다 또 저희세식구만 두들겨 맞으니까요. 기집편만 드는 병신이라는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큰아줌과 동서는 흐뭇해 하며 지켜보더군요.
"우리 딸 잘한다. 잘해" 이렇게 이야기만 안할뿐.
구정에 안가 화가난 시부모와 전화로 하루종일 입씨름을 했어요.
가만 안놔둔다는 시부모와 이젠 우리세식구를 지킨다는 저와.
한참을 경청하던 시부는 "너 말잘한다. 카세트 녹음 시켰니?"
독이 오를때로 오른 저는 그간의 모든일에 대해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감당 못하는 남편을 제치고 이야기했어요.
맺힌 한을......
이보다 더한 한이 있을 줄도 모르고.
철없는 엄마, 아빠덕에 우리 아이가 시부모집에 9일동안 볼모로 있었답니다. 남편의 줏대없는 행동덕분에 싸움이 끊이질 않았고 항상 부모 형제가 제일이였던 남편은 맞고도 정신을 못차리더군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 포기를 한것인지 아님 남편말대로 내가 잘못된것이고 못된것인지. 이혼을 결심한척 서로 각자의 본가로 갔어요.
아직도 우리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해 합니다.
엄마의 죄이지요. 남편정신 차리게 하려고 매몰차게 대한 내죄요.
결혼하면 내식구먼저 챙기고 부모형제 아닌가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우리남편은 매일 부모형제한테 짝사랑만 한답니다. 친모와 계부(이해해 주시고 양해하셨죠)가 있는
서 술로 날을 지세우고 친모와 7일만에 집으로 왔죠. 남편과 계부가
통화해서 아이를 데리고 와 다시 시작하라고.
아이가 걱정이 되었던 친정에서는 온갖 줏대없는 남편의 행동보다도
아이를 위해서 가자고 가야한다고 저를 꾸짖었죠.
저희 친모는 자신의 길을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기위해
아이를 데려오지 않는 남편에게 말않고 시댁으로가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했죠. 괴로웠어요. 우황청심원을 몇병씩 먹으며 겨우 시댁에 들어 섰죠. 혼자서. 친모가 함께 가면 서로 안좋을까봐 친모는 대절한 개인택시에서 기다리고. 큰시누가 청소(결혼전 남편과 내가 어른들 사드린 청소기로)를 하고 있더군요. 맥없이 자동차에 의지해 놀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저왔어요. 00야, 엄마야!"
지금도 잊을수가 없이 마음이 괴롭고 생생해요.
아이가 멍하게 한참을 쳐다보더니 엄마하고 울더군요.
서로 얼싸안고 우는데 큰시누가 떼어내더군요. 시모와 연합으로.
그래도 끝까지 안다가 뺏기다가.
시모와 큰시누가 저를 협박하더군요.
저는 아이의 짐을 싸고 정신없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윗사람으로써 자기할 도리도 못하는(아이돐때 전화한통 안하고,큰동서딸 돐때는 꽃다발에 축하편지까지 함.) 큰시누의 윽박지름이 먹히지도 않았고 도리어 저는 당당했어요. 때릴테면 때리라는 듯이.
시모가 저를 밀더군요. 경찰에 유괴범으로 저를 신고 하겠다고.
저의 기세가 꺽이지 않고 친모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큰시누가 시부와 고모부를 모시고 왔더군요. 저희 친모도 제가 모시고 왔어요. 시부가 점잖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이를 데려가려면
종교 (남녀호랑교) 를 믿고 부모형제에게 결혼2년전처럼 순종한다는 약속을 하라고. 저희 친모는 아무말도 안하고 지켜만보시고.
큰고모부는 대문에서 망보고 큰시누는 시부모와 앉아 저와 친모를
가르치더군요. 시부에게 *년 가만 안놔둔다고 욕했다고, 자살기도까지. 친모는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사위와 딸을 항상 뒤에서
누르고 있습니다. " 시부 왈 "사부인이 그러시는줄 압니다."하며 정중하게 대하더군요. 시모는 이혼시킨다며 펄쩍펄쩍 뛰고 다짐을 못받겠다싶어서 인지 시부도 이혼하러가자며 위자료준다며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뺏으려 하더군요. 아이는 절대 빼앗기지 않고 지켰습니다. 그와중에 고모부가 시골마루턱 높은 곳에서 저의 친모를 떨어뜨리며 " *년 당장나가 *년아, 이집에서 당장나가 이*아! "
"내새끼 내놔"면서 저를 잡으러 오던 시부는 조용해 지더군요.
저는 머리가 돌아 시부에게 아이를 맏기고 고모부에게 가 때려보라면서 들이 댔죠. 순간 친모가 어깨를 치며 "얼른 잘못했다 하고 가자."
정신이 들어 친모의 뜻을 듣고 잘못했다며 억어지로 시늉만 했고
본심을 아는 시부는 저와 눈을 부릎뜨고 맞장을 떴습니다.
아무말 없이 ....... 시누 왈 "저게 잘못했다는 짓이냐면서"
찬물을 끼얹은듯이 몇분이 지나고 무릎을 꿇은 저에게 시부 왈 "내가 너를 딸처러 생각 한단다."머리를 쓰담고 무릎을 만지더군요.
저는 만지지 말하며 듣고만 있다 왔죠. 종교를 끝까지 강요하더군요.
"동서가 믿으면 저도 하지요." 시부는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왜냐하면 동서와 큰아들한테는 못시키거든요. 싫어하기때문에.
저는 시부모가 결혼전부터 원했기때문에 시늉이라도 따라 하고 싫은 내색을 안했지만 맏동서는 갈지마오였기에 큰아들도 시부모도 큰시누도 말을 못했죠. 못마땅하면 훙쳐물고 일대일로 (시댁식구에게만)
단련시키는 것이 주특기 이거든요. 현재도 시댁식구들은 해다받치고 보태주면서도 팔자려니하고 동서를 받들고 살아요.
무사히 빠져 나왔냐구요?
아니죠.
고모부가 헐크같이 대문을 지키고 있더니 "모--옷-- 까!"
가로 막더군요. 전 아이를 안고 나오고 친모는 시모가 주섬주섬챙긴
옷가방을 들고 있는데. 시모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더군요. 그래도
물러 서지 않는 고모부. 큰시누도 지켜만 보고 시부도 역시.
택시기사 아저찌가 명함을 주더군요. 법적으로 필요하면 연락달라고.
사정을 대충듣더니 남자가 결혼해 자기가족을 못지키고 줏대가 없다면 이혼해야한다고, 폭력을 쓰고 욕을 하는 것을 다 보았거든요.
저와 친모는 아이의 걱정만 하다가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내렸어요.
터미널에서 누가 쫓아오는 사람들처럼 죄인처럼 시외버스를 냉큼
탔어요. 집에 온 남편이 놀라더군요. 시부의 전화를 받았다며
왜갔냐고. 전화한 시부 왈 " 어멈이 눈흘기고 시누한테 욕을 해서
자형이 소리를 질러 정신차려 아이데려갔다."고
하늘이 보고 땅이 보는데 이렇게 간단히.
둘째아들이 말 안들으면 "네앞으로 해놓은 땅 내놔". 그것도 당신이 둘째아들 집터로 미리 양도세 면제 될때 명의변경 한것인데도 (당신의 전처를 밟지 안으려고 : 시부도 차남임. 시할배할매 모시고 본가지키고 살고 장남 큰아버님은 시로 나가 자리잡고 부모돌아갈때 거의모든 재산을 가져감.) 그것도 우리남편이 고등학교때 말이다.
남편은 자형이 한 행동들도 모르고 기세등등이 나의 거짓꼬투리를 잡고 들어왔다. 시부의 속임수 인지도 모르고.
입씨름 끝에 그는 시모에게 확인 전화를 했고 평상시 거짓말을 하면 들통이 나는 시모는 어렵게 사실을 인정 하더라고.
남편은 기가 폭죽어 친모와 나에게 폭격을 맞았고 잘못을 빌었다.
저와 아이는 1년반을 안갔어요.
남편은 시부모생일, 명절에만 갔어요.
자식으로 할 도리는 했어요. 옷사서 붙이고 신발사서 보내고.
쇠고기는 항상 사구요. 한번 갔다오면 경비만 10만원.
시모는 제가 갈때보다 더 최소한의 쌀과 양념을 주더군요.
제가 갈때도 워낙 아끼는 분이라 새 모이 주듯이 주니까요.
그래도 동서네는 꿀몇병씩, 과일도 몇박스씩, 포도쥬스도 10박스씩
저희는 하나씩만. (그것도 나중에야 알았죠.)
김장도 결혼후 2번같이 하고 그후 4번은 동서와만 하죠.
아니 동서네 것만 해 주시죠. 저는 친모가 서울에서 오셔서 해주신답니다. 제가 안가는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더군요.
동서네는 기반을 잡았고 진급도 하고 아들도 둘이나 낳고 시모가 차남아기를 길러주고 차도 중형으로 바꾸고. 시부모가 행사로 동서네가면 싫어하는 기색은 여전하고 아니 더 심해졌더군요.
그래서 인지 시부는 저희남편에게 저와 아이를 궁금해 하고 오라며
전가를 하더군요. 작년 추석에 다녀 오고 올 구정에도 다녀왔어요.
저희는 저희대로 살고 자식할 도리만 하면된다고 생각 했어요.
이젠 동서가 무슨 짓을 하던 못본척 하려구요.
점점 시부모는 동서와 동서와 합세해 같이 행동하는 시아줌도 그냥 못본척 보아 넘겨 살아가고 있더군요. 작년 시부생신에 갔죠.
동서네 집에서 큰시누, 작은시누, 작은고모부 될 분, 시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더군요. 핸드폰을 해보니. 우리 세식구는 밥이라도 한끼 해서 먹고 오려고 갈치와 선물을 싸서 막 떠나기 전이였거든요.
남편이 혹시나 안계실까봐 전화를 했죠. 역시나.
가지 말자는 남편에게 그래도 우리할 도리는 해야 한다며 갔죠.
도착하니 시부가 저를 무척 반기며 잘왔다고 반기시데요. 동시에 도착했어요. 시모는 별루....
(추석때 동서는 친정에 일찍가고 저는
큰집/ 작은집 아저씨 댁에서 에서 머슴처럼일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데 더 있다 가라고 하더군요.시부모는 제가 안가는 사이 더욱
동서한테 더러운 꼴을 봐서 그런가 은근히 저희 집에 발을 트고 싶으신 눈치 였지만 저는 남편과 약속했죠. 시부모님은 절대 우리집에
안오시는 조건부로 시댁을 갔으니까요. 아들네 집에도 못간다, 양로원가서 살면된다,시모는 딸하고 같이 살면된다나? 남편을 이끌어 그러거나 말거나 차에 타고 휭하니 떠나왔어요. 빈수레로.)
시모가 언짢은 것은 어쩔수 없죠,뭐.
갈치 찌개를 해서 먹는데 시부가 감격하시더군요.
이유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큰아들네 가니 (미래 막내사위까지) 회 한접시 안사더라.
사윗감 앞에서 무안하더라, 있는 반찬에 국하나 끓여 먹고 왔다고.
큰아들회사가 어려워 진급했는데도 월급도 안나와 쌍둥이 손주들
우유값도 없고 마이너스 통장을 써서 빚도 많이 지고 통장에 2만원
밖에 없어서 시골에 못간다고."
시부는 끊임 없이 늘어 놓셨지만 난 관심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결혼후 1시간거리의 지방에서 각자 살아서인지
안보면 멀어진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고속버스를 타고 임신해서 부른배로 몇번 놀러 갔지요. 시아줌은 혼자 자고 있고 동서는 언니네 집에 갔고 (시동생이 온다는데도) 데리러 오라는 말에 열받고 데리고오다가 다쳤다며 저희 신랑탓을 하더군요. "도련님 때문에 나한테 화
내다가 형 다쳤어요." 수박, 생돼지고기2근,아이스크림,과자 등등
서너번을 갔었죠. 싫어하더군요. 동서가. 시아줌은 눈치만 보고.
차가 없어 노포동지하철까지 태워주더군요. 싫다고 했는데.
시아줌 왈 "아이, 괜히 태워서 여기까지 왔네."
임신중인 저는 눈물을 머금고 가방과 신랑과 내려 얼마 안있다
남편이 면허를 다시 따고 모은 돈으로 1500CC 중고 자동차를 샀죠.
동서는 1남 6녀중 막내래요, 친정은 시골이고 어렵대요,
언니들과 울타리를 치고 의지하며 살고 있어요.
"시"자 붙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싫었겠죠.
친정 식구와 어울려 사려는 사람같아요.

억울하다는 듯이 동네 아주머니가 놀러 오셨는데도 계속 말씀하시더군요. 그후로 회사가 망해서 기계지키러 간다고 오도가도 안하고
돈없다는 전화만 오나봐요.
23평주공아파트라도 팔아야 할모양이라며 값알아본다고 전화오고.
시부가 처음으로 작은 아들한테 푸념하데요.
작년겨울도 시모는 차남손주를 데려다
2달정도 키우다 병이 나셔서 얼굴이 형편없고
동네어른들 제가 기침약해서 가니까 손잡고 "겨울에는 쉬고 봄에 일
해야하는데 저렇게 두노인이 고생한다"면서 하소연 하더군요.
구정에는 왔더군요. 그렇게 기세 등등하게 회장님 같이 하고 다니더니 얼굴들이 별루데요.시동생가지고 불러다 단련시킨 큰동서는 없고
시모의 주변만 맴도는 노랑머리여자. 제수를 가지고 담배 꼴아물고 단련시려다 실패한 시아줌. 아직도 작은 엄마,아빠라고 인사도 않는
7살딸조카, 비싼유아전용 메이커 옷 셋트로 입힌 17개월 아이둘.

결혼하자마자 회사사정상 월급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아기를 갖고 산달에 시부의 생신상을 혼자서 떡 버러지게 차려 셋째이모님내외,막내이모님내외도 모셔서 해드렸죠. 남편은 직장관계로 혼자서 모두 준비 했죠. 동서는 저녁에 와 자고 아침11시에 친구결혼식이라며 시아줌을 내세워 시부의 화장품을 내밀고 가더군요. 음식을 다해 놓아서
인지 너무 많이 해서 인지 별로 기분이 안좋더군요. 설겆이, 밥,국등4끼분 식사를 9인분을 혼자서 발이 퉁퉁부어 무릎을 꿇고 싱크대에
기대 다했죠. 이모님들 내외분들도 동서내외가 꽁지 빠지게 나가는 것을 보고 횟집같이 갈 필요없다며 집에 있으나라고 하시데요.
시부모가 결혼식때문에 일찍간다는 말에 이모부들 얼굴이 변하시데요. 배가 남산만한 동서를 놔두고 간다니까. 일그러 지시더라구요.저희힘으로 산 집이라 그런지 시부모가 더 자랑하고 싶어서 인지 이모님들 내외를 항상 동반하시려 했죠. 그러나 동서 친구 결혼식이후
로는 막내이모님만 오셨지 (시부모한테 끌려서) 셋째이모내외는 안오신답니다. 물론 동서네 집에는 이모님들 내외가 한번도 간적도 없죠. 저희집과 한시간 거리인데도 불구하구요.
아이를 낳아 젖앓이를 해서 1주일 동안 친모가 오셨서 조리했죠.
돐때까지 먹여야 아이가 건강하다고 해서 먹였는데 8개월밖에 못먹였어요. 젖몰살이 나 응급실에 실려 갔거든요.
저희 시모 친정계가 있어요. 여자형제들 간에요. 셋째이모님댁에서
한다고 외삼촌들 내외하고 이모님내외하고 회잡수고 바닷가 구경온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돌봐주던 친모는 급히 서울로 가셨고 막내 이모
님내외와 시부모님만 오셨더군요. 막내이모님 내외가 전에 같지 않게
미안해 하시며 수박과 아이에게 용돈 만원을 주시더군요. 셋째이모내외는 전화만 하시구요,몸조리 잘하라구, 쥬스선물셋트도 보내시구요.
회잡수고(남편의 경호하에) 하루 밤주무시고 아침에 매운탕 끓여
드리고 점심도 먹고 가시라고 하니 막내이모님이 아픈데 가자며
시부를 억지로 끌고 가시더군요. 그것이 마지막이네요.
저희집에 오신것은.

"너희집에 언제 가면 되겠니?"
거실이 좁고 복도식이라며 항상 우리집에만 오시면 나한테만 못마땅해 하시던 시부가 이제 나에게 사정하는 식인가봐요. 은근히
남편과 아이의 한약을 해준다고하고. (물론 동서 없을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할일만 했어요.


남편이 중소기업에서 6년6개월 일하고는 대기업에서 스카웃제의 식으로 갔죠. 난 시부모, 시큰아버님내외, 작은 아저씨내외, 마을 최고령
할머님께 내복을 사서 남편을 인사 보냈죠. 회사에서 처음으로 나온
새해 달력도 보내고. 동네가 시끌벅적 했던 모양이예요. 작년구정에.
남편은 얼마전에 과장 진급했어요. 기대 안했는데 둘째소식과 동시에 겹경사가 되었죠. 지금은 몸조리 중이예요. 산후조리였으면 좋았을 걸. 입덧이 심한터라 계획임신이 아니였지만 가진김에 낳으려고 했는데 실패 했어요. 입덧만 한달 하다가.
입덧 시작하기전 남편이 퇴근후 와서 시골에서 의료보험관계로 전화했다더군요. 장남이 회사가 망해서 직장의료보험이 지역의료보험으로
됐는데 보험료 두달분이 12만원정도라고. 작은 아들한테 해도 우리한테는 해가 안된다나? 서류는 우리지역에서도 뗄수 있으니까 여기서 해결하라고. 연이틀 달아서 급하게 전화 했다고요.
전 화가 났어요. 달면 삼키고 쓰면 ?b는 부모가 부모인지를?
저희가족을 며느리가 임신한줄 알면서도 개패듯이 패고 (식구들 보란듯이) 버린자식 취급하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큰아들내외랑 의지해 살겠다던 시부모가, 우리세식구에게는 전혀 죄책감도 없이,
따뜻한 말한마디 안해주던 시부모가, 월급쟁이 생활뻔한데 야간근무 (수당없이 짤리지 않기위해 무료봉사)하는 아들에게 전화해 (인원감원 한다고 나리인 회사에) 무슨소리인가?
먹고 살기 위해 바둥대는 자식은 큰아들만 불쌍해 보이는 모양이다.
작은 아들은 본인힘으로 살면서 부모에게 할 최소한의 도리만을 생각
하며 홀로서기를 하는데......
형제간의 인연도 시부모 돌아가시면 끝나지 싶어요.
큰시누도 "다 너를 생각해서 자형이 그런거니까 이해해라"
그이후로 한번도 부딪히지 않더니 몰래 시댁에 드나들다 저희가 갑자기 들여닥쳐 들켰죠. 피해다니느라 고생했을 거예요.
바로 도망 가더군요. 꽁지 빠지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도 했죠. 저와 시부,시모가 마중도 하고.
얼마 있으면 들어올 막내시누 신랑을 단련시키려고 애쓰고 있더군요.
만만치 않은 막내 고모부는 이미 큰시누내외를 무시하는것 같던데..
막내 시누는 동서네가 별볼일 있을 때에는 딸랑딸랑하고 붙어있더니
올 신년 부터는 저한테 딸랑이고 있습니다.
얼마전 제가 손주가 넷인데 왜 우리 아이 사진만 하나 달랑 있냐고
시모와 시부에게 따로 물어보니
시모는 "사진을 준지 안준지 모르겠다. 큰아들집에서도 못본것 같다"
며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시부는 순순히 자백을 하더군요. "우리는 너희애 사진만 있으면 된다. 안주는 사진 더럽게 달라할 필요 없다"고.
손주들 사진 달라고 말씀도 못하시는 거예요.
쌍둥이들 인큐베이터서부터 모든 비용을 지금까지 대고 계시면서 말이예요. 달라 해도 안줄지 아시는 것인지.
큰집은 얼마전 노인네 두분만 아파트로 이사가셔서 신혼처럼살고 계세요. 큰집도 저희보다 더 곡절이 많지만 현명하게 사시는것 같아요.
작은방 한켠전부는 손주,손녀, 할머님,할아버님,아들들 사진전부있더군요. 자랑하시데요. 구정에 저희 시부한테 와서 좀 보라고.
찌그러진 시부모님의 얼굴이 상상이 가시나요?

당분간 아니 기약없이 시댁을 접고 살려고 합니다.
이유는 세가지예요.
하나, 구정에 가보니 시아줌이 백수될지도 몰라서 인지 시부모님이
큰며느리한테 쩔쩔매시고 (그것도 괜찮죠), 엄한 저와 아이한테
화풀이를 하는 시모와 그것을 앞에서 보며 즐기는 동서때문에.
(아이는 남편에게 맡기고 일만하는 나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시부에게 안기지도 못하는 우리아이와 무릎에 앉아 노는 동서네
이이들 : 우리아이에게 자연과 고향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도리어 할매,할배가 아기들만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6살인
손자가 잘 따르지 않아서 인것도 아니예요. 우리아이는 정이 그리워 사람을 무척 따르죠. 이야기도 잘하고 표현력도 좋다고 주위에서 그러죠. 관심을 절제하고 냉정하게 정을 안주는 시부모님을 포기하렵니다. 아이에게 상처만 줄것 같아요. 해꼬지 하는 아이도 아닌데 딸조카와 노는 모습도 못보더군요. 잘따르고 땀을 뻘뻘 흘리면 노는 아이들을 보고 못마땅해 하는 큰며느리,큰아줌,시모. 희망이 안보여요.
동서의 아기들을 지키고 계시는 시모, 기가 안죽고 열심히 왔다갔다가하는 우리 아이가 못마땅하신지 소리를 지르시더라구요.

둘, 둘째아이의 두번째실패로 남편에게 더이상 못가겠다고 했어요.
더이상 시골에 관여 하고 싶지 않다고.
제가 조합에 알아보고 남편에게 간접적인 부양의무는 도리상으로 있다는 말에 안된다고 했어요. 남편은 전화도 못하고 저에게 미루더군요. 제가했어요. 시부에게. 전에 같으면 소리지르고 윽박지르고 오지마라고 하실분이 할수 없다는 듯이 자존심을 세우시더군요.
5분후 시모의 앙칼진 목소리가 전화로 왔어요.
"구정안에는 그렇게 잘하더니 왜 그러니?, 명절에 와서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가는 짓이 잘하는 짓이냐?"
저도 되물었죠.
"작은아제댁에 차례지내러 안가시냐고 여쭈니까 가고 싶으면 너나 가라는 둥, 큰집에서 주신 차례음식 내미니까 왜 가져왔냐며 동서 앞에서 짜증은 왜내셔요?"
그리고 " 동서 있는데서 왜 보란듯이 저희아이 (혼자 마루에 있는데)
에게 소리지르셨어요?, 제가 아이를 나무래면 애 기죽이지 말라면서
야단치시면서 가만히 있는 애는 왜 트집이세요?"
시모왈 "내가 피곤해서 그런건데, 언제 기죽였니?"
저에게 우리아이는 제일 아픈 가슴입니다.
당신 피곤하고 애터지는 것은 큰아들식구를 돌보느라 그러시는 것인데 왜 우리 모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큰댁에 가서 동서들 사이에서 당신 큰며느리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내탓도 아닌데.....(나와 동서는 상종안함/두형제도 무언)

셋, 우리세식구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남편혼자라도 가라고 하니까 간다고 안하네요.
혼자 다니며 더러운 꼴을 많이 봐서 그런지.
눈치가 없고 마음약한 남편은 시아줌처럼 못해요.
나와 아이는 남편과 함께 사랑방신세다. 한마디로 손님방에 객이다.
시부모와 이야기라도 한다치면 동서는 자기 큰아들과 홍쳐물고 멀리
떨어져 끝날때까지 염장 지르죠. 저와 대화하는 꼴은 절대 못본다는 식이죠. 그러니 저는 사랑방에 있어요. 혼자서. 일만하다 가죠.
그러다보니 찬밥신세(동서말 대로)인줄 알면서 오기를 부리며
싫어하는데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있는 남편.
아이는 잘 몰라서 그런다지만.
직장에 안좋은 일 있고서 부터는 시아줌은 시부의 그림자가 안되고
쌍둥이들만 보살핀다. 불쌍한 척.
시모의 그림자보다 더한 그림자가 된 동서는 시모와 웃고.
동서 딸조카입에서 나온 말로는 "엄마가 아빠를 발로 막 차요."
시부모,옆방의 우리부부가 들었다. 동서내외가 없는 사이(아이 맡기고 시아줌 단련시키러 나감)
갈수록 이사태가 심해질 것이고 다알면서도 직장 잃은 큰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할 시부모님의 정성을 알기에 큰아들,며느리와 편하게 지내시라구요.
우리세식구도 그간의 묵은 때를 씻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실을 기해서 우리행복부터 찾고 생각하자구요.
자식 할 도리 하면서 다시 우리가족간의 사랑을 찾으려니 풍전등화가
따로 없어서요.
마지막 방법으로 우리아이, 저, 남편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없는 것
일까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결혼도 가을에 있고 시부모 환갑도 내년인데......
남편은 그러더군요. 화가 날 때면.
"당신도 꼭 당신같은 며느리 얻을거라고."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지요!

너무 너무 긴글 원,투를 올리고 나니 약간은 두렵네요.
어떤 응답들을 하실지.
저랑 비슷한 경우도 많으리라 싶어요.
우리 서로 힘내구요!
아, 참.
왜 차남이 딸보다 못하냐구요?
결혼전 부모형제 밖에 모르던 총각이 결혼6년이 지난 지금 하는 말,
"장남은 장남이라 귀하고, 장녀는 장녀라 귀하고,막내는 막내라 귀하고, 차남이 제일 못하네, 그지?"
푸념하는 남편의 내막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한마디 조차도 큰아들,큰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내자식 조차도 평생을 친가에서는
그부모(우리부부)처럼 살아가야 하니까요.

큰시누는 전문대 졸업후 큰논을 팔아 화장품가게를 차려 연애하다
다 망하고 시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뱃속에 혼수품1호를 가지고 결혼했고 현재는 시부의딸랑이 노릇을 고모부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작은시누는 늦게 학습지교사로 사회활동을 해오고 있구요,
시부의 지원으로 마티즈를 몰고 다니며 월급보다 지출이 더 많아
시부에게 용돈까지 지원받으며 결혼준비 하고 있어요.
식구들 모두 못마땅해 하는데 큰시누와 고모부만이 대찬성하며....

큰아줌은 결혼 7년동안 시부에게 핸드폰2, 선풍기, 자동차2, 양식,
양념(친정식구들것도), 김장, 사철과일등등, 쌍둥이 인큐베이터
부터 필요한 모든 경비를 아직까지도 지원받고 있죠.
이유는 시부모님의 노후와 제사까지 돌봐야 하니까 그렇겠죠.
동서왈 "나중에 늙어서 누구밥 얻어먹을 건데 나한테 함부로 하겠어?, 자식(딸조카)까지 낳았는데 쫓아내기야 하겠어?"
너무도 당찬 동서의 행동에 철부지 저는 "형님은 어떻게 시부모께 하고 싶은말 다하고 사세요?" 의 답이었죠.
지금도 동서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수는 없다" 시부모께 폭탄선언을 한 모양이예요. 시아줌은 노래방이나 해야겠다고 한다네요.
시댁의 땅이 문제인것 같아요.
땅이라도 팔아서 두노인네 농사 열심히 지어 큰아들 다섯식구를
평생 먹여살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과제만 남았죠.
"동서때문에 나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결혼전부터 비교당해서"
정말 할말이 없더군요. 스스로에게 반문도 했지만 그때는 그뜻을
몰랐어요.

첫응답해주신 "이상해님"은 무슨 뜻인지 감이 오시나요?
아직 글을 다 못읽으셨으니 질투하는 작은동서 밖에 안되겠죠.
전세가 역전 될수는 없어요.
이 집안에는 장남이 최고고 기만 안죽이면 되니까. 표면상으로만.
저희에게만 항상 강요하기때문에 문제가 되니까요.
어른할 도리 못하면서 어른짓만 하려는 큰아들내외와 시부모를....
올 구정에 저도 없는 아침에 저희아이에게 큰아들내외한테 절을
하라고 시켰고 번개같이 넙쭉 절을 한 저희아이를 보고 분통이
터진 남편은 만원 절값받고는 딸조카의 절을 안받았다고 하더군요.
시부모님은 그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사시는 분들이나까요.

이미 다시 발을 들일때 포기한 부분이지만 자식까지 병신취급받으니
그것만은 참을 수가 없더군요.
너무 이기적인가요?

제 마음속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