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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에 올려주신 리플에 감사드리며.


BY 포커페이스 2002-09-25

제 글에 리플달아주신 여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따로 올려주신 '난바꿨어'님께도...)

님들의 리플을 읽고 많이 생각해 봤어요.

전 결혼 9년차에요.
저는 제가 그리 잘하는 며느리도 또 착한 며느리도 아닌 그저그런 평범한 며느리라 생각됩니다.

단지 제가 명절마다 시댁에 갈때마다 거드는 허드렛일에 비하면 다른 주부님들의 제사에 대한 고통이 더 클거란 생각이에요.

친정엄마의 노고를 쭉 겪어보니 제사나 차례상 차리는거 보통 힘든게 아니란걸 알기에....

시아버지도 화장해버려서 산소도 가지않고 제사도 없으니....
기일날엔 그냥 기도하러 오시는 교인들 끼니만 챙기면 됩니다.


글쎄.....

조금더 깊이 생각해봅니다.

저도 결혼 초부터 굉장한 일들을 많이 겪었죠.
여기 아컴에서 많이 위안도 받고 또 지난일들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하고 어쩜 사는게 다들 고만고만할까 싶기도하고....

대단한 시모들의 사연을 보며 '그래, 딱 그거구나.' 싶습니다.

너무그렇게 서운하게도, 열낼 필요도, 바라지도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바라만 보자.

저는 시아버지의 알콜중독, 줄담배, 무능력.
시모의 냉정함, 이기적, 독선, 폭언.

신랑의 술주정.. 시댁에서 간난쟁이 안고있는 내 앞에서 부엌칼들고 죽어버린다고 난동부리고..


얘기하자면 끝도없죠.

저 병원에 입원했어도 시집식구들 단 한명도 와보지 않더군요.
병원비가 모자라 남편이 어머니께 돈을 빌렸나봐요.
저 퇴원해서 그돈 이자까지 계산해서 드렸어요.

남편이 입원하게되니 시어머니 첫날부터 퇴원하던날까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병원에 사시더군요.
거기다 사촌에 팔촌까지 다 병원에 부르시고....

이날까지도 날마다 전화하셔서 아범 건강 챙기란말만 하시고 끊어요.
어쩌다 집에 오셔도 손주 과자한봉지 안사오고 아범 약만 사오세요.

가장 가슴에 멍이 들었던 건.
시아버지 장례치르던 날.

워낙 게으른 식구들, 고모들은 손하나 까딱 안하고..
엄청난 피로에 천식이 있던 난 향냄새에 완전히 기절해 버렸어요.

신랑이 그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줘서 기관지 확장제 맞고 링겔꽂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신 7개월된 아가씨가 병간호 한답시고 제 옆에 앉더군요.

저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자꾸만 눈을 감고 싶었지만 옆에서 조잘거리며 얘기를 거는통에, 또 자릴 비웠다는 죄책감에 억지로 잠을 ?고 있었습니다.

"우리신랑이 나 응급실 가지말라고 그랬는데... 응급실가면 험한꼴 본다고...."
저는 그냥 아가씨 가 계시라고 했죠.
"안돼요, 오빠가 언니 지키라 했어요. "

그 응급실엔 저와 어떤 아주머니 두사람 뿐이었습니다.

제발, 링겔맞는 이 시간만이라도 잠좀 자고싶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와서 장지가야 된다고 얼른 나오라더군요.

삼분의 일도 채 맞지않은 링겔병만 바라보며, 시커멓게 부어오른 주사자국의 손등을 보며, 이죽거리는 배불뚝이 시누보며, 정말로 눈 시리도록 허연 상복 치마자락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아무도 내게 말걸어주는 이 없더군요.
고모부만이 좀 괜찮냐고 물어주시고....

어쨌든 인천 화장터에 가서 수많은 교인들,친척들수발에 밥 준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끊이지않는 손님들 상준비...

어머님도 자식들, 친척들도 아버님의 죽음에 눈물한방울 흘리지 않으셨어요.

식구들중 교회다니지 않는 저와 우리남편.

남편 혼자만이 자식된 도리로써, 무능력하게 구석에 처박혀 존재의 유무조차, 어머니의 구박에 그 스트레스 다 받고 처량하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에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엄청 울었고 통곡했습니다.

살아생전 그리도 좋아하셨던 약주한잔, 담배 한개피 연단에 올리고자 했더니 매정하고 쌀쌀맞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그런거 안한다." 단 한마디로 못하게 막으시는 시어머니....

막무가내로 올리겠다고 아들은 울며불며 하소연 했지만 끝내 거절하시고...

끝끝내 연단에 술한잔 올리는 아들 보기 싫다며 끝끝내 돌아앉으셨죠.
남편이 절올리고 주저앉아 "아버지~ 아버지~" 울부짖자

"느그 아버지는 그래도 하고싶은거 다 하고 돌아가셨다." 한마디 하시더니 저보고 저 술잔 빨리 치우라시데요.

저는 도저히 그 술잔 치울수 없었습니다.
남편 끌어안고 진정되기만을 바랄뿐.

남편의 눈물이 가슴을 적셔와 한없이 아팠지만 서슬퍼런 시모 앞에서 눈물조차 흘리지않는 식구들 앞에서 목놓아 울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 모든 장례절차 다 치루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끝없이 푸르른 하늘보며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산과 들을 보니 갑자기 내 가슴속 깊이깊이 꼭꼭 채워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아버지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차창밖으로 흐르는 경치따라 지금까지 내가겪은 시집에 대한 설움이 봇물처럼 터져버렸죠.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때 친정 동생에게 퍼부었던 시어머니의 폭언이 떠올라 걷잡을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진정시키려해도 저는 정말 너무울어 가슴이 아릴정도로 울었습니다.

남편은 레스토랑의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나를 실컷 울게 해줬습니다.
너무 울어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때까지...

온몸은 피로로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가슴한켠이 뻥 뚫린듯 시원하고 개운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꼼짝안고 지켜줬고 휴지를 건네주었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러더군요.
만약 어머니와 나 둘중에 택하라면 죽어도 나를 택하겠다고.

본심은 아닐지라도 곪아터진 내 상처에 그 말한마디가 명약이 되더라구요.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납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아무리 심하게 대하셔도 그냥 그래요.
또한 저도 제가 하고싶은 만큼만, 할수있는 만큼만 합니다.

어차피 제가 어머니의 딸이 될수없듯 어머니도 제 어머니가 될수 없지 않겠어요.

전 그냥 그 선에서 바라봅니다.


또 너무 긴글이 되버렸네요.(죄송)

제글 읽어주신 여러님들 행복하시구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