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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화상


BY 허민숙 2002-10-12

1974년 유난히 더웠다던 그해 7월 여름에 나는 세상에 입문했다. 넷형제중에 셋째로 태어나 막내처럼 자란 툭하면 울던 철없던 울보. 줄넘기와공기도 시시하다고 초등학교 졸업무렵까지 거의 하지 않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못한그런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친구가 좋았고 내가 가진것을 나누길 좋아했으며 친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든 해주고 싶었던 참 욕심없던 아이였던 것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것이 더 소중해지고 친구가 떨어져야 내가 갈수 있다는 대학을 결국 가고야 말았다. 글읽기가 더 좋은 나는 다른 특기가 없으므로타인이 장래의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작가가 되고싶다고 접대용 장래를 만들어 놓고 가끔은 작가가 되고싶어 신춘문예 당선작을 밤새 읽으며 몸살을 앓곤했다.

그러나 어디쉬운일인가 ? 다소 창조력이 떨어지고 게으름의 첨단을 달리는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는 몇편의 습작들-그 습작이 말해주듯 나는 이미 작가로의 길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국어국문과를 말발 세우러 간것처럼 말수적던 나는 허공에 뜬 입방아질만 그새 요란해지기도 했다. 조금 늘린 글발로 졸업무렵 작은 신문사에 잠깐 근무를 한적도 있었지만 역시 내 적성이아니라 뒤도 안돌아보고 긴게만 느껴지던 6개월을 청산하고 말았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겠기에 그 준비기간으로 돈도 좀 벌수있고 여유가 있는 임시직장이 필요했고 그것은 글짓기 학원강사였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그들과 금새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일을 잠시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느새 방황은 돈이 좀 모이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는 나에게 다른길로 충동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미지의 세계로의 먼여행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주머니돈과 쌈지돈을 먼지나도록 털어내어 비밀리에 어학연수를 준비해 떠나기 일주일전 폭발적으로선언을 했다. 만류하실 것이 분명했기때문에 ...이유는 다양했고 타당성있는 것들이였으나 어떻게 나를 막을 것인가 ?

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주 그 먼길을 그만 미련없이 떠났다.

그 일년은 내게 큰 변화를 준 내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늘 어머니,아버지의 큰그늘에서 부족함없이 지내던 내가 혼자서 무엇이든 다 해내야하는 그 과정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는 모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것이다. 더더욱 연고지없는 타국에서의 얼마간의 벙어리생활과 친구 좋아하고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정많은 나에게는 연락의 단절은 큰 고통이 아닐수 없었다. 그 단절은 영어를 좀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을 때까지 연락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내스스로와의 약속이였음에도 하루에도 몇번씩 참기 힘들어 후회하곤했다.

입을 열고되먹지 않은 콩글리쉬를 열심히 하며 하나하나 교정해간 덕분인지 영어로 필요한 기초적인 표현들을 해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한지 한 두달쯤 지냈을까?..그곳 한인교회에서 브리기타라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우연치않게 그녀와 나는 생일마져 같았다. 우리는 그런이유로 더욱 친해졌고 서로에게 위로가 될만한 개인적 고민과 갈등들을 함께 나누기 시작하게될 쯔음 그녀는 한국으로의 취업을 결정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보다 6개월먼저 한국 충청도 보은 고등학교로 영어를 가르치러 떠났었다. 내게배운 한국문화와 음식과 언어를 직접 사용할수있는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이 다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왔고 98년 1월에 그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지만 계속 연락하며 가장 절친한 친구중에 하나가 되어있다.

96년 한국귀국후난 초등학교 영어교사를 천전 초등학교에서 시작했고 타학교 초등학교 교사들의 영어 회화강의를 부족하나마 시작하게 되면서 하면서 수업을 준비하는과정보다 수업하는과정을 더 좋아한 나는 교사로서의 적성에 대한 조금의 우려를 시작했다. '더 공부가 필요한데.., 이정도로 그치면 안될 것같은데...'하는 생각들이 지금의 자리를 머무르는 마음보다 더컸기 때문에 갈등은 더욱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그러나 마음뿐 그자리를 자켜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일이 좋았던 것이다.

97년 12월 나는 모든 직장생활과 하던일들을 중단한채 흥분되고 초조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였다.

내게도 열열한 사랑이 있었다. 너무나 복잡하고 아련한 사연들... 그사랑의 결실은 이렇게 된다.

91년 유난히 따사롭던 봄빛교정에앉아 이런 저런 수다로만 보내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아련해지고 좋던 가슴을 흔들던 그 산바람속에서 유리는 꽤 괜찮은 생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입학후 2개월을 보내고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따분해진 대학생활에 활기를 갖자고 동아리를 들기로 제안을 한 것이다. 복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붙여진 게시판을 기웃거리다 나는 대학학보사에서 기자를 뽑는 대자보를 발견하고는 잠시 눈에 불꽃이 일고 가슴이 요통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유인즉 너무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자신을 어떻게 그런공간에서 흡수시킬것인가..라는 문제와 함께 그공간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 왔기 때문이다. "합격" 이것은 시험본 모든 동기들에게 다 앉겨온 선물이였다. 기뻤다. 그후로 난 대학생활을 그곳에서 불태우기 시작했다. 때로는 그생활에 빠져드는 나를 망설이며 때로는 자의든 타의든 단련되면서 ........

대학 학보사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에 세상보는시작을 교정을 해준 학습은 나에게 많은 거부감과 함께 또다른 세상을 알게해준 하나의 건강한 매개체가 되어갔고 그러던중그 학습을 담당하던 학보사 선배와의 길고도 애매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말이 없고 독립적이며 남들을 의식하지않는 ..그러나 차갑지 않은그 선배가 내마음을 조금씩 앗아갈쯤그는 군대를 갔다. 기다리란 말을 하기에 또는 기다린다는 말을 하기엔 우린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마음이 많이 그에게 가있었다는 것을 그가 군대가기 며칠전에 알았던 나는 그를 그냥 보낼수 밖에 없었다. 가끔 편지를 하며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쌓여 갔었던 것같다.

그러나 편지로 사귀어온 많큼의 시간보다 현실의 그는 좀 달랐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자신이 하고있는 일들 이외에는 다른것들이 많이 소중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였다. 지극히 개인적이라 사회적구성원들과 잘 어울릴만한 성격이 못되었지만 자신의 분야 컴퓨터 만큼은 독보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그가 제대를 한것이다. 그가 한번 컴퓨터를 시작하면 그것은 누가 옆에 있어도 모를 만큼 그냥 빠져있는 그. 그런 모습이 좋으면서도 나를 많이 외롭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단련되버렸다고 할까?...

더욱이 그의 제대는 나의 대학졸업과 맞아 떨어졌고,사회에 나온 나와 이제 다시 대학을 복학하는 그와의 견해차이가 극복할수 없을만큼 다달았을때 난 그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힘든것은 그가 아니고 바로 나였다. 사실 내가 더 많이 그를 사랑했었던 탓이였을까?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남녀문제에 있어서의 현실적으로 이해해야하는 많은 문제들. 그것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것이였다. 오히려 그를보낼 준비가 내게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그를 더 많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2년이 흐른 97년 결국 그는 결혼하자는 제의와 미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말했다. 결혼까지는 결심하지 못한나는 그만 97년 가을이 시작될 무렵 마음 가볍게 보낼수가 없었지만 그는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많은세월속에 그를 더 이해하면서특히 전여옥의 소설대목중 "내가 아플때 끝까지 내곁에서 날 지켜줄 사람을 떠올려 식구 이외에 떠오르는 이와 결혼하라."라는귀절을 보고난 순간 그를 떠 올릴수 있었다. 그 순간 난 무척 편안해지고 그리고 행복하기마져했다.

한창 골이 패일대로 패인 IMF한파가 몰아치던 97년의 12월에 나는 그와 결혼을 했고 원래계획했던 유럽배낭여행을 포기하고 부산부터 동해를 거쳐고속버스여행을 했다.

지금 다시 미국이라는 낯선 이국땅에서 그의 공부바라지(?)를 시작하고 있는 나는 이렇게 자꾸 바뀌어가는 나의 꿈들과 현실을 보며 접대용 미래를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내꿈이 또 바뀔련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난 안다. 내꿈을 정확하게 말할 날이 올것이란 것을 ....그래서 난 또 내일을 준비하려고 한다. 밝은 꿈을 꾸며..

잠시 친정어머니께서 편찮아서 귀국했다가 한 글자 올립니다.
그 곳에서도 아줌마닷컴을 자주 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