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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뿐인 아버지 ,,,,,그려도 핏줄인가여 ???


BY 소라바람 2003-01-23

님들아 안녕하셔여 지금 부터 저가 정말 장황한 이야기를 할려고 합
니다 ,,끝까지 들어 주시고 저에게 용기 백배 부탁합니다

저가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어머니 가 안계시더군여 ,
어머니가 할머니랑 싸우시고 집을 나가신것 입니다 ..
저의 집은 그당시 안양에 살앗고 제밑으로는 저랑 7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고여 .

저의 집안어른들은 정말 아들 선호 사상이 심하셔서 어머니의 결혼
승낙도 저의 동생을 낳으면서 받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여
그러니 전 당연히 찬밥 덩어리 신세 였지여

그때부터 저의 어머니 그리움 병과 .여자라는 이유로 정말 우리
친할머니 무던히도 절 미워하셨답니다
너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는 그당시 집을 자주 비우시고
어쩌다 들어오시면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는 그런 식이 였지여
한겨울에는 보일러 도 안들어오는 찬방에서 재?m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일짝 산행부터 시작해서 (약숫물 )아침밥은 지어놓고 학교에 가
고 돌아오면 그 넓은 집을 (어린나이라 몇평인지는 모르지만 4층건
물 )그계단을 다돌아가면서 쓸고 닦고 밭에나가서 잡풀이며 목장을
하니 얼마나 일은 많겠습니까??
그리고 먹는 거라고는 어른들이 먹고 남긴 찌끄러기 음식하고 김치하
고 먹고 정말 학교에 숙제 해갈 시간도 없이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반면에 정말 제동생은 왕 대접을 받으며컷지여
할머니방 장롱 위에는 그당시 귀하다는 스펨이며 파인 애플 켄이며
외국 과자가 다양햇고 어린 아이를 흑염소를 먹일 정도로 그아이는
귀한 장손이었습니다 ..

정말 이러고 살다가 는 안되겟다 싶어서 엄마 찻으러 가출도 하고
그러면 번번히 잡혀 오기 일쑤 이고 잡혀오면 정말 혁대로 죽도록
맞고 그랬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 빨아서 널어놓은 빨래사이에서 난로 연탄을 갈다가
집게가 그만 발래에 구멍을 내 놔서 방금 불에서 꺼낸 집게로 두들겨
맞고 정말 가줄을 했습니다
일단은 학교 운동장에 숨어 있다가저녁이 되어서야 안양을 뜨는 식으
로 하여 가출에 성공 을 하였습니다 ..

그러고 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와서 재혼하신 어머니랑 살다가
새아버지의 갈등과 어머니 보기도 민망해서 집아래 작은 방을 얻어서
살다가 지금의 신랑을 만나서 결혼 하고 산지 10년입니다

그러던중 어머니가 지병으로 3년전에 돌아가시면서 연락 한번 없던
새아버지가 찻아와서는 눈믈로 울면서 어머니 유산으로된 아파트를
처분할려고 하니 전자식들 서류가 필요하다면서 그 서류만 해주면
어머니 살아계실때 빌려간 돈 1.800만원도 주겟다고 하더군여
당연히 빌려간 돈은 돈이고 자식들이 지분은 놔눠 먹기 식인데
제동생지분은 말이 없어서 전 혼쾌히 허락을 할수가 없어서
저의 신랑과 새아버지만 저가 살았던 안양으로 친아버지를 찻으러
안양으로 올라갔지여 그런데 그 집안 식구들 재산이나 부동산 ,건물
모두 관리인 한테 맡겨놓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테 엿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서류고 돈이고 머고 못해주겟다고 저가 틀어서
지금 새아버지한테 연락도 안하고 한달 가량이 지났는데
저의 미국에 계신 아버지가 연락이 온것입니다 .
지난일은 다잊고 다시 만나보자고 동생하고 저하고 너무 많이 세
월이 흘러서 서로 지나가도 못알아볼정도이니 아버지만이 연결고리
가 되어 이젠돈이고 무엇이고 자식이 중요 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너무 못하고 살았고 너무 구박을 많이 하고 키워서 미안하다고 울고
난리가 났었다고 저가 전화를 고의고 안받으니 저의 산랑한테 전화
가온것입니다 ...
제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컷는지 이야기로만 들었지 아직은 실감이
안되는 저의 신랑은 지금 은 아버지가 세월이 흘러서 많이 변했으니
안그럴것이니 만나보라고 전화 통화라도 하라고 하지만
전 전화 통화하고 나면 당장에 한국으로 나온다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추오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화는 자꾸오고 신랑은 만나보라고 난리이고 ...
정말 저혼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겟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아버지를 사실은 새아버
지랑 싸우시다가 오랫동안 앓아오뎐 고혈압이 터져서 사망하셧다는
말도 저혼자 마지막 임종을 지켯다는 말도 해서 일을 크게 만들고
하는것도 이미 돌아가신분 다시 상기 하고 욕보이는 것같아 싫습니
다 ..그런데 전화는 자꾸 오고 ,,정말 저 는 어찌 하면 좋은가여 ?

참고로 그래도 핏줄이니 만나 보라는 말을 하실 분한테 말합니다 .
저는 정말 어린 시절이 파란 만장해서 참고로 저의 머리에는 500
원동전보다 조금 큰 움푹 들어간 상처가 있습니다 .
제나이 5살때 아버지만 보면 자꾸 운다고 아버지가 절 다락에서 던
져서 머리가 깨지면서 입이 돌아가는 사고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17시
간의 뇌수술을 받은 자국이 잇습니다 .
물론 그당시 아버지는 절 그렇게 만들어 놓고 도망을 가고 없어서
옆집 아주머니가 (저의 어머니는 그당시 시장을 가셧다더군여 )
저를 데리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업고 가셧다고 그당시 저의 집에와
있던 사촌 언니가 말해주더군여
그러고는 어머니가 절 한달동안 간호하시면서 병원비 낼돈이 없어서
의사한테 정말 나중에 돈많이 벌면 주겠노라고 하고 약만 겨우 받아
서 울고 불고 사정를 해서 그병원을 도망나오다시피 해서 나와서
집에돌아와서 머리에서 생 실밥을 직접 쪽집게를가지고 뽑앗다고
하더군여
그당시 수술은 정말 성공 적이라서 저가 또 아이큐가 높아서
다행이 바보는 안되고 정상으로 산다고 하였다더군여

저의 어린 시절 이렇게 파란 만장햇고 그래도 지금은 누구 도움없이
아직은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딸아이 하나 키우면서 잘살고 잇습니
다 ..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앙금은 아직도 남아 있고 지금 애야 부모라고
자식이라고 찻아서 미안하다고 한다고 그 어린시절을 기억들이 없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

저가 저의 친가가 못살고 어려운 형편이라서 저를 그리 키?m다면
이해는 합니다 ..
그러나 친가 정말 안양에 노른자 땅이 다 그집 것입니다 ..
집도 정말 영화에서나 보는 집처럼 멋지게 짓고살앗었습니다
집안에 우물 수영장 연못 잔디밭이 다잇고 세들어사는 가구가 30가구
가 넘는 다면 이해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저한테만은 어머니닮아서 밉다고 온갓구박은 다하고 때리고
먹다남은 음식이나 먹이고 학교 도 잘안보내고 (어머니한테 돌아와
검정고시로 학업 마쳤습니다 )

이여자 지금 소설 쓰는거 아냐??
하실분 있어서 저가 정말 저의 목숨보다 소중한 5살딸아이를 걸고
말합니다 정말 사실 입니다 ..

님들아 저는 어떻할까요 ??
아버지라고 만나고 다시 연결이 되어야 될까여 ??

전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
너무 앙금이 많이서 정말 힘든데 .........
저가 나븐년인가여 ??
애비도 몰라보는 나뿐 불효녀인가여 ?????

님들아 정말 저한테 방법을 알려 주셔여 ...

낼도 전화는 또 올것입니다 ....
정말 마음이 내키지않습니다 .......
그러나 ...핏줄은 어쩔수 없는 건가여 ????

아 제발 부탁합니다 ......
조언 을 ...방법을 .........

부탁합니다 .,,절실 ...합니다 정말 ......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