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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 생신상


BY 며늘 2003-02-19

남편이나 난 무척 바쁜 사람들이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다보니 퇴근 시간도 들쑥날쑥이고 휴일같은것도 남들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남편이 외아들이다 보니 집안에 식구도 별로없고 시부모님 생신이 돌아와도 거의 외식을 하곤 했다. 없는 식구에 괜히 음식 만든어봤자 버리는게 반이라며 시모님이 첨부터 그렇게 하기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난 이번만큼은 시모의 생신상을 내손으로 차려드려야지 맘먹게 되었는데 그만 시모님 생신날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서 그게 물거품이 되었다. 속상했지만 이번 생일은 그냥 지나야겠단 어머님 말씀엔 이번엔 꼭 제손으로 차려드릴려구 했는데 죄송하다며 전활 끊었다.
근대 그날 저녁에 남편이 그러는거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항상 그렇지만 생일날 저녁이나 간단히 먹으면 끝나는거냐며 철들이 없다고 그러셨단 거다. 난 왜 어머님은 그런말을 내게 하시지 그러시냐고 했더니 남편이 어머님이 당신 생일날 그런말 며느리한테 하기 민망하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 이해가 갔다. 이해하고 나니 어머님한테 서운한것도 없어졌다.
근데 문제는 그냥 나한테 화가난단 거다. 전날 찾아뵙고 미리 미역국을 끓여서 아침상을 차려 드렸어야 하는데 미처 그거까지 생각못한 이 아둔함이 말이다.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데도 말이다.
난 생신 당일날 집에서 근사하게 음식을 차려갖고 시댁으로 날라가서 멋지게 상차려 드릴 생각만 한거다. 거기다 중요한건 바로 이틀뒤 그니까 지난 일요일 큰어머니 생신날 어머님이 그곳을 다녀오신 것이다. 어머님은 무척 부러우셨을 것이다. 누구는 며늘들이 차려주는 생일상에 친척까지 초대하는데 어머님은 한번도 생일날 누굴 초대해 본적이 없으시니 말이다.
그치만 남편이 휴일날 쉬질 못하니 설사 누굴 초대하고 싶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힘들다. 또 외며느리다 보니 그 많은 사람들 초대해도 솔직히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쨌든 이래저래 산넘어 산이다. 시모는 말은 안하지만 서운하신 기운이 역력하시다. 말로라도 담번엔 잘해드리겠다고 했지만 모르겠다. 지금이야 쉬고있지만 또다시 일을 갖게되면 바빠질꺼고 그때가서 다른집처럼 챙겨드릴 자신이 없다. 어쩌다 한번으로 끝날꺼면 첨부터 시작도 하지 않는것이 낫겠단 생각도 들고.
여하튼 첨엔 우리 시모 연세에 맞지않게 참 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모도 늙긴 늙으셨나 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