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344

시댁보다 더 가기 싫은 친정


BY 나무 2003-08-29

요즘 올라온 글들을 보니까 게중엔 명절증후군이 도져서

 

고심하고 계시는 분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남편의 설자리를 마련해 주고 아이들 교육상 우리네 어머니와 며느리

 

되시는 분들은 온갖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못할 고충들을 삼키고

 

또 삼킬 날을 두려워하며 올린 글들을 읽으며 씁쓸한 기분을

 

좀체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저 또한 한 집안의 며느리기에 동질감으로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또다른 저의 고민은 말뿐인 친정에 있어서

 

하루하루 답답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오늘은 이곳에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려고 적어봅니다.

 

전 남매로 사춘기까지 결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이혼으로 친할머니께서 간간히 돌봐주시긴 했는데

 

공교롭게도 친할머니 역시 젊은 새할머니인지라 머리큰 손주는

 

짐과 같은 존재였었나 봅니다.

 

메마른 정서와 부족한 애정으로 소심한 학창시절을 마칠즈음

 

아버지께서 재혼을 하셨는데 새어머니는 머리 다큰 딸과 아들에게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세상을 강하게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역감정없이 제 새외가쪽을 지칭하겠습니다.

 

전라도분인 새엄마는 일가친척 없이 동생인 이모한분이 계시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우린 조촐한 식구에서 다섯식구로 불어나게 됐습니다.

 

아버지 일나가시면 우리 남맨 제 앞가림하고 있슴에도 당황스런 일들이

 

벌어져 혼란스런 생활의 연속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상고 졸업후 생활비를 벌며 야간대학을 다니던 그때 어느날 무슨 일로

 

강의시간에 늦어져 허둥지둥 서적들을 챙기러 집에 들렀는데

 

이유없이 소원한 관계로 거의 말없이 지내던 이모가 적응 안되는

 

억센 전라도 사투리를 써가며 기지배가 더 배워 뭐하느냐며

 

돈 벌어 시집이나 빨리 가버리라는 둥......입에 차마 올리지도

 

못할 소릴 했고 책상을보니 책이며 중요한 자료들을 모두 버리고

 

난 후에 내가 빨리 사라져야 아빠와 엄마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매번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는데 저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지금은 연락도 잘 되지 않는 남동생에겐 손찌검도 서슴없이 하는

 

엄청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고 결국 남동생은 대학 입학을

 

얼마 앞두고 가출을 했고 입대후 몇번 만난게 끝으로 제대하자마자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그 사이 어버지에게 새어머니와 새이모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얘기 한적도 있지만 절대적으로 믿지도 않으셨거니와 자식입장에서

 

지고 받아들여야지 새어머니 자리가 좀 어렵고 불편하겠느냐며 같은

 

여자로 불만삼지 말라시는 말씀에 더이상의 대화들은 단절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이런 대화가 있던 다음날이면 저는 새어머니나 이모에게

 

가차없이 두 볼을 내주어 따귀를 맞고 밟히는 일은 예사가 되었고

 

직장생활 3년만에 친정을 벗어날 돌파구로 결혼을 선택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살게 되었습니다.

 

다달이 입금되는 월급 통장은 새어머니가 관리를 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부모가 그동안 뼈부서지게 거둔보답으로 친정재산 늘렸다

 

생각하고 젊은인생 새로시작하는 마음으로 잘 살라며 십원한장 안보태

 

주시는 겁니다. 

 

그나마 한푼 두푼 모아둔 한학기 등록금을 밑천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는데 아버지는 새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돈으로 알고 있더이다.

 

제가 번 돈은 여자라 사치하는데 쓰고 손이 커서 실속없게 여기저기

 

퍼주느라 못모았다는 소릴 할머니께 나중에 들었습니다.

 

워낙 제 자신의 형편이 보잘껏 없었던 때라 남편과 대출금을 얻어

 

단칸방에서 3년을 버티며 않입고 않쓰고 해서 해 잘드는 전세로

 

그리고 5년을 더모아 작은 내집 한채를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티를 안내려 해도 못먹고 못자서 마른 얼굴과 쇠약해진

 

몸을 볼때마다 남모르는 서러움에 우리 부부는 부둥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었는데 부모복은 없었어도 가난하지만 착한 남편 만난게

 

더 다행이란 생각과 감사한 인연으로 다시 일어나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토록 힘겹게 보내던 시절 연락해도 찾아가도

 

문전박대하기 일쑤던 친정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왔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제 먹고 살만하니 아이도 가져야

 

할테고 단맛쓴맛 다 겪어봤으니 부모가 자식기르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겠냐며 먹고 살만하니 자식된 도리도 이쯤에선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날 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밤낮 구별없이 전화에 불이 났습니다.

 

오전엔 새어머니가 오후엔 새이모가 서로 합심으로....열심히......

 

남편이 받는 날이면 고함도 치신답니다.

 

사위도 자식이라는데 남의 딸 데려다 고생시켰으면 친정에도

 

베풀어야 하는게 아니냐!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운운하면서 그렇게요.

 

남편은 저보다도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혀를 찹니다.

 

그러다 어떻게 알았는지 집을 찾아와 새어머니와 이모는 가끔 억지를

 

쓰고 가십니다.

 

저희 남편과 겨우 7년의 나이차 밖에 나지않는 새이모는 주객이 전도되어

 

거실에 大자로 누워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에게 밥차려 달라고 큰소리를

 

치고 시간도 늦었는데 밥은 무슨 밥이냐며 탕수육과 몇가지 요리먹는게

 

빠르다는 장단을 맞추는 새어머에게 시달리는등 별일이 다벌어져

 

이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실때는 차비조로 돈 10만원이라도 어찌어찌 꼭 받아내야 가시는 분들!

 

남편은 저에게 화도 안냅니다. 

 

저는 그런 남편에게 미안해서 울지도 못합니다.

 

장인이라고 힘도없는 무지한 답답이 아버지를 혼자 찾아가 뵌적도

 

있다고 합니다.  뼈만 남은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두 불쌍해서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건강염려되는 말만 전해드린채 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우리친정, 콩가루의 먼지조차 없이 날아간  집이 되었습니다.

 

곧 명절이 다가옵니다.

 

시골에 계시는 시어른들도 연로하셔서 막내지만 외며느리인 저는

 

지금부터 무엇무엇 챙기느라 바빠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제는 출가외인은 옛말이라며 제수비용의 일부는

 

앞으로 제가 부담하라고 명절10일 전으로 30만원씩 송금하라고

 

계좌번호를 불러주십니다.

 

열받아 전화끊으면 받을때까지 합니다.  코드 뽑으니 남편 핸드폰으로

 

합니다.  선수쳐서 새어머니 전환 받지 말라해서 우리남편 전화 꺼버리면

 

집에 달려올거라고 협박메세지 남깁니다.

 

우리남편 주말부부라도 감수하자며 자기는 서울에 저보고는 시골내려가

 

시부모님 모시고 거기서 은둔생활 하라합니다. 

 

오늘아침 새이모가 또 전화했습니다.  명절전에 시골내려간다 했는데도

 

가기전에 친정에 들러 힘든 어머니 장보는것두 좀 거들어야 당연한거 아니냐며.

 

안오면 시댁에 전화할꺼랍니다.  자기말만 하고 전화 뚝 끊습니다.

 

이럴때 술이라도 마실줄 안다면 좋으련만 ~ 넋두릴 풀어두 답답합니다.

 

수면시간이 모자라 정신없이 자고있는 남편얼굴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어제 병원에 갔더니 결혼9년만에 임신 4주란 얘기 듣고 왔는데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라합니다. 

 

남편 엄청 기뻐할테고 친정에서 부른다는 얘기하면 어떤 사태가 될지

 

이번엔 뻔히 그려져서 머리가 아픕니다.

 

지구 어디에 숨어도 찾아와 괴롭힐것 같은 두 여자분이 세상에서 젤

 

무서운 스토커처럼 겁납니다.

 

우리 소중한 아기 낳을때까지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