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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렌트 김영애 무서운 사람이네요


BY 울랄라 2003-09-03

저는 대전에서 올라온 남편과 두 아들을 둔 주부입니다.
7년 전 8000만원의 사채급전을 심부름 한 것이 이렇게 죽음의 고통으로 평생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 스님은(LG 홈 쇼핑에서 판매하는 "황솔 바이오" 회사의 대표자 박장용씨고 회장인 그의 부인
탈랜트 김영애씨 입니다.

그 스님에게 심부름 한 돈이 달러 이자의 급전이라 이렇게 7년을 미친듯이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질 않고 발버둥 쳐도 현재 2억원 가량의 사채빚, 은행빚으로 은행 이자도 해결을 못하는 현실입니다.

저는 20년 동안 옷가게를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밤잠 안자며 이루어 놓은 가게도 그렇게 성실하게 마련한 집도 다 내주고 보증금 100만원에 25만원 월세방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 택시일을 하는 남편은 1통 만원 어치씩 보일러 기름을 사다 넣다가 너무 지치고 빚쟁이들이 집에까지 난리를 치니까 다 죽어 버리자고 기름을 방바닦에 부어서 애들이 울고 난리가 났어요.

옆집에서 신고를 해서 면했습니다. 화를..
그 화병으로 애들 아빠는 집을 나가고 고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은 세상에서 엄가가
제일 싫다고 합니다.

운동화 살 여유도 없어 헌 운동화를 얻어다주면 말없이 신던 아들이 말입니다.

옷가게 밤에 끝나면 밤 9시 부터 야식집 아침까지 일을 하고 죽을수도 살수도 없는 암울한 빚과의 고통밖에는 빚값는 일밖에는 숨을 쉴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취해도 피하기만한 박장용씨는 7년전 사채빌려가서 몇달 후에 값으면 돼니 걱정말라고, 미국가서 송금해 줄테니 그러면서 연락을 하면 전화번호 바꾸고 또 바꾸고 그러시던 사람이 고리사채 빌려간 몇달후에 비행기 안에서 김영애씨를 만나서 사랑이 싹텄고 사업을 했고 여성 잡지에 대서특필로 실렸습니다.

그렇게 150억원 매출이라고 엄청난 부자가 됬다고 이회창씨가 살던집 10억원 대호화저택에 산다고 세상에 자랑을 많이 하셨지요. 거지가 되서 이세상 살기 싫다며 구도의 길을 가겠다는 그때의 박장용씨에게 너무도 불쌍해서 믿었던 이 미련한 년을 7년의 모진 고통을 표현도 잘 한적이 없는데, 그 호화 주택에서 나좀 살려달라며 애걸복걸 사정하는 나에게 10일 밤낮을 길바닦에서 사정해도 그때마다 경찰을 부르고 그 경찰관 들이 5번이나 출동했지요.

나중에는 그 호화 주택앞에 얼씬도 말라며 경호원 2명을 고용해서 날 밤새 지키게 했지요..

그 밤새 소나기가 아침까지 와도 땅바닦에서 몇날밤을 지내게 해야 했어요 그렇게 가슴에 피가 흐르지 않는데 TV 탈랜트 김영애씨는 청승맞게 잘도 우는 장면에는 어떻게 하는지 이 무섭고 금수많도 못한 사람들이 대접받고 잘 살아야 하는지 어렵게 낸 시청료를 그런 무서운 얼굴을 봐야 하는지요
법데로 하세요. 법데로 하면 되잖아요.
그 말이 귀에 지금도 들립니다. 차용증 하나 받지 않고 믿었던 사람이 그런 부도덕하고 철면피 같은 사람들이 기업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불쌍하고 미련한 사람이 법으로 할려니
여러분 사람 노릇 못하는 저좀 도와주세요

박광숙 올림. H.P 016-703-9821


(1) 고니 정밀 주식 280주 3000만원 상당.
(2) 이양선 카드대금 변제 1400만원
(3) 현금 1100만원
(4) 2000만원 현금 입금
(5) 뉴욕 송금 500만원
합 8000만원

8000만원에 대한 사채 고리 급전 정신적인 고통과 가정 파산의 7년 고통은 2000만원의 합의금으로
동의 합니다.
이 동의서에 게재 한 날 5일 이내로 송금한 금액이 동일 시에 이 합의서는 유효합니다.

2003년 2월 5일
대전 서구 도마1동 180-17번지
박광숙 534-8259

위의 호소문을 KBS방송국 앞에서 돌리겠다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셨지요?
김영애씨 황솔바이오 회사에 3시간 전에 팩스로 넣었구요 새벽 6시 까지 가게 일을 하고 아침이면 서울행 기차를 타고 방송국 앞에서 호소문을 돌린지도 70일입니다. 물론 하루도 빠질수가 없었지만 밤새 가게일을 하니까 내려올때는 도착지 서대전역을 깜박 잠이들어 강경, 익산까지 내려가기가 수십번,

죽은것도 아니고 살아있는것도 아니고. 이 호소문 돌리기가 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날씨에 마음과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도 대 나약한 심성과 혹독한 시련을 견뎌야 했지만 삶의 벼랑끝에선 어쩔수 없는 선택이잖아요....

황솔 바이오 김영애 회장님! 박장용 사장님!
양심에 회향할 줄 기다렸습니다.
정문 입구에서 김영애씨 당신을 보았을때 저좀 잠깐 만나요 박장용씨좀 만나게요 해달라고 하니.
하던 일이나 계속하세요. 하며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조롱하듯 비웃으며 사라지고는 단 1분도 만나자고 연락한번 없었구요
우리 선생님한테 올라오는 TV촬영기사와 신문기사가 다 통제되니 소용없다고 고생하지 말라고,
역시 김영애씨 위력이 대단하더군요.
출판물에 의한 김영애씨가 명예회손 죄로 고소를 하셨더군요.
이 모든 원인 제공은 박장용씨 김영애씨가 아닙니까.
무슨 적반하장 입니까?
물론 1997년 9월 중순경에 8000만원의 고통을 2003년 2월 5일에 너무 급전의 절박한 상황에서 일부라도
받기위해 합의를 해준 저의 대 실수지만 김영애씨 공인이란 이유하나만으로, 한 가정의 고통, 한 인간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한 박장용, 김영애 부부의 오만과 독선을 그렇게 표출해야 했나요?
박장용씨 만나 사업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사업을 일으켜 성공했다고 잡지 인터뷰 기사에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재혼, 사업성공) 당신들 부부가 그렇게 존귀하고 지체 높으신 계급이라면 저 또한 아주 소중한 한 가정의 주춧돌 입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그 힘에 얼마나 특혜를 누렸는지 알수 없지만, 법칙금 한번 안낸 경찰서 문 앞에 한번 안가본 교과서 같이 살아온 저로서는 진실이 법이고 질실은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밖에 저항살 수 없지만 그리도 모질고 표독함이 결국, 자신의 제일 큰 수혜자 일수밖에요.
김영애씨 기사가 나가고 나서 박장용씨에 대한 피해자가 여러명 있다고 제가 발설한 것에 놀라 7년동안
연락 한번 없던 사람이 그 피해자 70 노부부 한테(홍재 슈퍼 주인)그 절 수련생 아가씨(이양선씨)를
시켜서 밤 12시에 현금 1000만원을 가지고 와서 박장용씨 심부름 이니 영수증 써달라고 하길래 1997년 10월에 아파트 잔금 줄려고 가져간 돈을 빌려줘서 그동안 2부 이자는 줘야 한다고 하니까 이일에 잘 협조해주면 그때 더 이자도 생각해 주겠다고 하셨지요..
박장용씨와 저의 소식을 알려고 그 할머님이 옷가게 수 없이 와서 찾아도 파산이 나서 옷집 연락처도 모르고 있던차에 생각지도 않았던 현금 1000만원을 받았다구요 옷집 때문에 잘 되었다구요.
2003년 7월 24일 밤 12시에 이양선한테 받았다구요.
꾀 많은 토끼, 난 미련한 곰이지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손등이 안보이나요.
부모를 찔러 죽인 원수도 사랑하라는 경전의 말씀도 나의 고통은 과거세의 내 모습이라고 자위하지만,
김영애 회장님 당신은 측천무후가 아닙니다.
여 황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어린 젊은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사회의 어둡고 시린곳을 소리없이 모성으로 따스하고 포근하게 소리 없이 감싸안아야 할 희생과 어떤
고통을 수반한다 해도 어른 어머니 지킴이어야 하잖아요.
이래야만 하는 저도 당신부부도 참 부끄러운 것 입니다.
탈렌트 김영애, 황솔바이오 김회장님, 박장용씨 부인, 공인이란 직함은,
이렇게 아름다운 품격을 갖춘 김영애씨 이길 바래요
절망의 끝에는 분명 희망이라는 것이 해답이지만,
이제는 마을을 내려놓을렵니다.
법의 심판을 따를 수 밖에는
네티즌 여러분 죄송합니다.

2003년 8월 25일 박광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