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올케가 셋 있습니다.
나도 시댁에 가면 시누이가 장난아니어서
최선을 다해 좋은 시누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우리 언니왈
가끔은 올케들에게 섭하다고 투정하면
그게 입에 다 맞니 그런 떡이 어디 있니
하면서 일단락합니다.
살다보면 부모 자식간에도 불만이 생기고
서운함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묻어두고 잊혀지는게 가족아닐까요.
저라고 왜 살면서 섭한게 없을까마는
내가 섭할때는 올케들도 섭한게 있겠지
말을 안하고 살뿐이지 하면서
잘 하려고만 노력하고 살앗습니다.
그중 첫째 올케는 특별한 사람으로 자리했습니다.
올케가 들어오고 이듬해 오빠는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 버렷습니다.
이란성 쌍둥이를 남겨두고 말이죠.
오빠의 병을 알았을때 쌍둥이 겨우 5개월
기믹힌거야 뭐 말로 다 할까마는
올케가 뭐 기도하면서 낫게 한다 하길래
두말도 못했습니다.
쌍둥이는 언니 나 하나씩 맡아서 키웟습니다.
우리 아이도 그때 겨우 18개월이엇기에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키 183 몸무게 80 이 넘던 거구가
딱 4개월 만에 빠싹 말라 가버리고 말앗습니다.
그리고 임종하던날 새벽 5시에 연락와서 가 봤더니
자다가 일어나 보니 오빠가 숨을 거두엇더래요.
그게 새벽 1시넘어서였는데 목사라는분
불러서 초염다하고 우리에게 연락했더라구요.
어이없었지만 언니가 옆구리 꾹 찔러서
눈감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쌍둥이 돐이엇는데
그냥 넘어간다기에 내가 옷 다입혀서
생일상 차려 주엇습니다.
실제 우리 아들은 그냥 넘겼는데말이죠
그리고 몇달뒤 언니가 예전에 들어준
보험이 있어 보험금타더니 멀리 아주 멀리
땅사서 집짓고 이사갔습니다.
그것도 교인들이 있다나 어쨋다나
그래도 말한마디 안했습니다.
우리는 해 줄게 없으니까요.
이사가고 바로 연락이 왔더군요.
세탁기가 고장났다구.
쌍둥이가 있으니 기왕이면 큰걸로 사달라구
언니는 일절 도움주지 말라고 엄포 놓은 상태라서
제가 남동생들에게 애기해서 96년당시
10키로 짜리 사라고 해 주엇습니다.
자신이 보태서라도 13 키로짜리 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후 냉장고가 고장났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알아서 사라고 했습니다.
우리형제는 조실부모했고 다알아서 결혼한 상태엿기에
누구하나 지금껏 힘 펴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장사를 크게 벌려 놓은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 넘 어려 웠지만 한달에
한번씩 3시간 이상거리를 다녀왓습니다.
이사가고 바로는 오빠가 살아생전
자신의 자동차 끌고 다니다 딱지 떼인게 있어
이전이 안된다며 해결해 달라고 해서
그또한 내 오빠가 한거니까하고
두말없이 해결해 주엇습니다.
그리고 매해 자신의 생일 며칠전에
연락이 옵니다.
꽃도 보내고 방송에 글써서 선물도 타 주엇습니다.
보험회사 다닌다해서 이것 저것 다 들어주엇습니다.
저뿐아니라 제 동생들도 다.
가전제품 외판한다하여 4백이상 매출도 올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닌 중간 중간 절대로 도와 주지말고 너나 일어서라며
늘 충고했지만 그래도 어디 그렇습니까
아이들데리고 이곳에 올때면 차비달라고 해서 동생들이챙겨 주엇습니다.
언니가 옷을사 보냈는데 맘에 안든다며
돌려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차라리 돈으로 보내면 자신이 맘에 드는거 사입힐텐데
그래고 두말 안했습니다.싸움나기 싫어서요.
우리 아들 입학할때 전화가 연결 되엇길래
언니 우리 아들 입학하우 했더니
올케왈 자신의 첫딸 (오빠에게 재혼한 것이었음)이
대학 입학 한다면서 뭐 해줄거냐고 하더군요.
어이 없어 입 다물엇습니다.
이듬해 쌍둥이 입학할때 하나씩 맡았습니다.
막내 동생이 브랜드 운동화 두켤레
사촌동생이 문구류 종합, 서울 동생이 옷
언니가 가방사라고 보내고
저는문구류 산 동생이 10만원도 더 나왔다길래 보태주마했습니다.
그런데 올케 운동화가 뭐냐고 촌스럽다고 또 난리더군요.
그해 오빠 제사에 가서 기절하는줄 알앗습니다.
아무리 교인들 추도식이고 건강 따진다하지만
빨간 잡곡밥이 다 웬말입니까.
다음편에 또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