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시리즈로 올릴까 생각중이에요.
저 밑에 어떤분이 친정언니한테 맞고 글을 올리셨네요.
그글을 보니 내 가슴속에 맺혀진 상처와 응어리들을
지금껏 가슴속에만 담아왔었는데,
이젠 님들과 함께 하나둘씩 풀어보고 싶어
그동안 친정식구들에게 당했던 상처들을 나름대로 풀어버리려 이글을 씁니다.
<엄마편>
울엄마는 아빠를 나이 마흔에 잃고
큰딸,작은딸, 큰아들, 작은아들, 나,막내아들을
홀로키웠다.
위에 세사람은,
아빠돌아가시자 마자일찌감치 집을 나가 각자 밥벌이를 했다.
아빠도 없는 텅빈집엔
갖초등 1학년인 나와
초등3학년인 작은오빠,
두살어린 남동생과 엄마가 지냈다.
엄마는 허구헌날을 술로 보냈다.
초등1학년인 막내딸인 내가
세상을 알면 뭘알고 , 살림을 할줄알면 뭘 할줄알겠는가,
학교 다녀와보면 늘 텅빈집에서
일단은 집청소를 하고,
하루종일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때꾸정물 흘려가며
동네방네를 누비고 놀다가는
해그으름이 되서 집집마다 굴뚝에선 김이 모락모락
구수한 된장찌게 냄새가 코를 찔러오고,
우리랑 같이 놀던애들은 개똥아 소똥아 밥먹어라 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우리삼남매는 엄마도 없는 집으로 들어와
내가 차린 밥을 먹고,
엄마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린다.
꼭 하루도 안빼놓고 작은오빠가 나를 때렸었다.
왜 그리 날 미워했는지,
마지막까지 맞아본 기억은 26세까지이다.
진짜 초등때부터 남자주먹으로 배를 맞아 숨을 못쉴지경까지 간적도 있고,
뒤통수에 신발을 던져 그자리에 쓰러지며 코피를 흘린적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동생은 엄청 이뻐한다.
엄마올때까지 밥차려주고, 기다리다보면 왜그렇게 나를 때렸었는지..
흠신 두둘겨 맞고나서는 울며불며
엄마가 매일 진을 치고 술을 마시고 있는 아줌마네 집엘 찻아간다.
술이 만취되있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그런엄마한테라도 오빠가 때렸다고 이르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럼 엄만
눈은 풀려있고, 혀는 꼬부라져 있고,
나를 보면 갑자기 따귀를 철썩 철썩 때려가며 있는데로 술주정을 한다.
그런엄마라도 ,
있다는 자체만으로, 엄마가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었는지,
비틀거리며 넘어질듯 한 엄마를 고사리 손으로 부축하고 겨우 집엘 데리고 오면,
그때부턴
술이 깰때가지 우리삼남매를 못살게 군다.
그 얼굴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귀신의 형상이었단 기억이다.
그러다가,
우리를 잡아먹겠다는둥, 죽여버리겠다는둥,
무서워서 이리 피하고 저리피하고,
때론 오빠가 그런 엄마를 밀쳐내버려 엄마가 쓰러지기도 했었고,
그럼 그와중에도 엄마 죽었을까봐 걱정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기억들.....
그러다가 술주정을 할만큼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아빠사진 붙잡고 통곡을 한다.
너무 괴로웠다.
갖초등1학년인 ...
한창 철부지에 떼쓰기 좋아할,
세상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가득했어야할 그 시기에
난 이미 우울이란게 이런거구나 하고 배우게 되버렸다.
소아우울증이 이미 단단히 걸려버린 상태..
엄만 술을 먹은 다음날이면
나를 학교에 못가게 했다.
그리곤,
술먹고 속아파 죽겠으니 자기 병간호를 하라고 시켰다.
그래도,
그래도, 그 어린마음엔 울엄마 죽을까봐 걱정이 되서..
성심껏 간호했었던 기억,
다음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비롯 같은반 친구들까지도 나를 무시하고, 왕따를 시킨다.
넌 결석대장이야....라고,
한번은 학교엘 갔더니 운동장에서 같은반 친구를 만낫는데
그애의 얼굴표정이며 말투가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그랬어..넌 학교에 올필요가 없는애라고 그랬어..."라는 말을....
이게 왠말인가.
이틀이 멀다하고 학굘 결석하다보니,
학교에 와서도 늘 엎드려 있고, 학업을 못따라가다보니,
선생님눈엔 내가 그리 보였었나 보다.
그어린마음에도 어찌나 상처가 되던지..
그당시엔 학교에 나무마다 송충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송충이를 잡아와서 내 등에 붙여놓고 마구 놀렸었다.
그럼 난 너무 무서워서 울며불며 발을 동동구르며 제발 송충이좀 떼어달라고
발악을 했었다.
그럼 애들은 대여섯이 내 주위에 동그랗게 몰려서서
깔깔거리며 나를 놀렸었다.
이미 초등 1학년의 어린나이부터 난 왕따를 경험하고 ,
우울증이란걸 경험해버렸다.
세상은 더이상 아름답지도 꿈과 희망으로 비춰지지도 않았었고,
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하찮고, 놀림받아 마땅한 존재였었다.
이미 마음속엔 패배감이 자리잡고 있었고,
열등감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너무 빠른 초등1학년때 자리 잡아 버렸었다.
초등시절 내내..
난 작은오빠의 구타와 막내란 이유로 남동생만을 편애하는 엄마로부터 늘
한구석에 쳐박혀 지내야 했다.
사랑이란 자리에서 늘 구석으로 밀려놨어야 했던 나...
엄만, 유독 큰아들인 큰오빠를 믿고 의지했다.
장남이란 이유로.
한번은 큰오빠가 지방에서 상경하여
명절이라고 올라왔다(오빤 아빠 돌아가시자 마자 학업을 포기하고 사촌오빠네 집으로
양복기술을 배우러 내려가서, 명절때면 올라왔다.고작 중1의 나이에 그런생각을 했었다니,
참 칭찬들을만 하고 역시 장남답다..지금은 떵떵거리는 부자로 산다.)
엄마가 오빠한테만 그 귀하다는 탕수육을 시켜주며
내가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며 옆에 있는데
넌 저리가라고, 하면서 오빠에게만 열심히 먹였던 기억.
너무 속상했다.
나도 입이 있는데,
나도 탕수육이란게 맛있단걸 아는데,
같은 자식인데 오빠에게만...
엄마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어릴적 과자가 먹고 싶어 남들 먹는 과자 군침흘리며 처다보면,
엄마가 그런다.
과자먹고 싶으면 엄마 없을땐 외상으로 먹어
대신 막내너만 먹어라..
너(접니다.)랑 제 오빠...는 절대 외상하지마..
막내와 큰오빠만 편애했었던 엄마의 모습..
두고 두고...
이미 나이가 먹어버릴만큼 먹은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상처로 남습니다.
어릴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그런지,
학창시절 내내..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전 변변한 단짝친구 한명 없었습니다.
처음엔 모두 저에게 호의적이고 호감을 느꼈다가도
어둡고, 외로워 보이고 ,자신감 없어보이는 저의 모습에 싫증을 금세 내버리곤
다 떠나가 버리더군요.
학교 공부도 그냥 그랬고,
졸업도 그냥 그렇게 해서,
고졸출신으로 변변한 직장도 못얻고,,
그럭저럭 어디 개인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일본에서 유흥업소를 손수경영하는 사장님이 되어있는 우리언니가
저를 초청했습니다.
와서 경리를 봐달라고,
그리고 공부도 하라고,
세상 다시 한번 살아보잔 맘으로 언니를 쫓아 일본물을 먹으러 갔습니다.
간 첫날,
엄마가 국제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으로 전화가 왔네요.
전 엄마가,
비행기 무사히 잘 타고 갔냐? 걱정했다..이런안부의 전화를 했을줄 알고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첫마디가,
"너 ! "
아주 흥분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개똥이(남동생) 신용카드 니가 가져갔어????????????????!!!!!!!!!!!!!!!?
이게 뭔소린가???싶어 생각해보니,
남동생카드가 제 지갑에 쓸려온모양입니다.
"어..내 지갑에 있네.."
했더니 "당장 소포로 보내.."하더니 그걸 왜 가져가냐는둥 하면서 노발대발 하더니
전화를 탁 끊어버리더라구요.
진짜...
부모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게 부몬가????
딸래미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나갔는데,
걱정해서 전화한게 아니라, 남동생 카드 가져갔다고 노발대발 해서전화를 해?
니가 그러고도 부모냐? 싶더이다...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저에게도 사랑이 찻아왔습니다.
지금의 남편을 일본에서 만나,
한국에 소개시켜주러 갔습니다.
그당시 엄만 큰오빠집에서 올케언니와 같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행동좀 보십쇼.
몇년만에 온 막내 딸래미,
그것도,
결혼하겠다고,
정말 기특하게도 막내딸이 결혼하겠다고 사윗감을 인사시키러 데려간건데,
사윗감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더니 그앞에서 울남편한테 뭐래는줄 아세요?
엄지손가락을 펼쳐보이더니,
"우리 큰며느리 최고야!!!"
허허허허...............
허탈합디다.
사윗감이 어떤사람인지는 안궁금했나봐요.
자기몸 의탁하고 있는 큰며늘한테 어찌했던 잘보이고 싶었나봐요.
첨 보는 사윗감앞에서 엄지손가락까지 펼쳐보이며
며늘 최고야란 말을 몇번을 하던지....
이게엄마인가 싶은생각...
그리고 그날..
인사어찌어찌 마치고 돌아서는데
아파트 복도를 쫓아나오더라구요.
인사라도 하려나 싶었었요.
그런데 저한테 손을 벌리더니 용돈좀 달라는 겁니다.
이게 할소린지..
사윗감앞에서 ,결혼하겠다고 찻아간 딸앞에서 그런행동을 하고선
손을 벌리며 돈을 달란말이 나오는건지..
뒤도 안돌아보고 돈없다고 하고선 와버렸습니다.
그리곤 결혼식,
전 결혼준비때문에 일찍 식장에 가있었던터라
집에서 벌어진 일을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날 아침..
저 결혼식날 아침..
아빠도 돌아가시고,
그나마 친정엄마 한분 계신건데
그 한분 남은 엄마가 자식결혼식에 참석안하면 누가 하나요?
엄마가 아침부터 뭐가 심기가 불편했었는지
식장에 안가겠다고 으름짱을놓고 어기짱을 놓고
올케언니둘이 아기 어르고 달래듯이 달래서 겨우
데리고온 식장이 었답니다.
난 그런것도 모르고
부모님한테 인사하는 순서에
그동안의 친정에서 당한 설움들과 그래도 엄마랑 이렇게 헤어지는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었는데.........
딸결혼식에 안오겠다고 어그짱을 놓았던 엄마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할소리는 아니지만 뇌구조를 파헤쳐 보고 싶었어요.
정말 인간말종같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으로 인사가던 날..
집에 들어서니
엄마 낮잠자고 있고,
그날 제 남편밥 있던 반찬 냉장고에서 꺼내서 제가 차리고,
제가 치우고 먹었습니다.
남편한테 어찌나 미안하고 , 창피하고,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음 도망가버리고 싶더군요.
지금 이날 이때까지
엄마가 단 한번도 사위를 위해서 밥을 손수해준적이 없습니다.
어느사위들은 처가집가면 씨암탉을 잡아준다는데
울엄마는 혹시라도 친정에 찻아갈까봐 오지 말라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모두 귀찮다고...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부모가 아닙니다.
그러다,,,
첫애를 낳았는데,
첫애 낳았다고 연락하니 오긴왓는데
내 옆에 앉아서 아이고 허리야...아이고 허리야..를 반복하던 엄마.
방금 애기낳고, 힘들어 죽겠는딸래미 앞에서 허리야를 반복하더니
그냥 집에 가버리고는 두번다시 얼굴 안보이더라구요.
그리곤,
결혼 이삼년후쯤 구정때,
시아버지가 친정까지 남편과 저와아이를 태워서 데려다 준적이 있습니다.
전 빈말로 들어가셔서 떡꾹이라도 드시고 가세요 했는데,
시아버지가 진짜로 저희 집에가신겁니다.
울엄마, 어땧는줄 아세요?
울 아버지한테 대놓고
아니 명절날 어디 남의 집엘 방문을 하느냐고..
술먹고 술주정 하며 사위인 남편한테 저한테 욕을 욕을 해대면서 당장 가라고..
저 그날 눈물 펑펑흘리면서 집에 가겠다고 한것
큰오빠가 잡는 바람에 오빠네 집에가서 명절 보내고 왔습니다.
너무 서럽네요..지금 생각해도...
어릴적부터 왜 그리 나만 그렇게 만만히 생각했었는지
자기 술병나면 나만 학교 못가게 하고,
자기 성질나면 다른 자식들한테는 꼼짝도 못하면서
내머리채는 26살때까지도 쥐어잡고 흔들었었습니다.
치가 떨립니다.
맞았던 기억들 생각하면,
죽이고 싶습니다.
그런엄마가,
큰오빠가 모시고나서 삼개월만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첨엔 엄청 울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사진지 만4년이 지난 지금..
이젠 슬픔은 온데 간데 없고
저에게 했던 모진 행동들만이 증오스러운 마음으로 남아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슬픔에 가려져 , 증오하는 마음이 없어질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와 증오하는 마음은
망자를 앞에두고도 사그라 들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면 할수록
내가 그토록 친정에서 당했었던 기억들이
잊고 싶으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나의 멍에와 굴래가 되어
가슴을 옥죄어 오고 가슴한구석에 화석처럼 궂어버려
문득문득 그 기억들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힙니다.
아직 엄마를 용서못합니다.
용서할날이 올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돌아가신분이라 해서 용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서히.....서서히..
이렇게 내가 글을 올림으로써..
그래서...스스로 하나둘씩 아픔들을 일부러 들춰내고,
떨꿔내는 과정들을 통해
내마음속에 용서란 마음이 찻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써내려 가렵니다.
오늘은 엄마편까지만 하렵니다...
다음편엔 형제들 편을 쓰렵니다.
몹쓸인간들의 형제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