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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3년만에 돌아오겠다는 남편 놈이.


BY 세상에 이런 놈도 2005-08-18

 

기구한 내 팔자야.

나는 3돌 반 된 늦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들 7개월 때 남편 놈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었다.

우리는 재혼 부부였고,

남편 놈 사라진 이유는 '전처의 아이들 공부를 봐 주기 위해서'였단다.

남편은 미국 시민권자였고

전처 소생의 아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고 있었다.

미국 출장을 간다더니 나 몰래 즈그들 살 집을 LA 에 얻어 놓고

하루 아침에 남편 놈이 사라졌다.

 

오전에 아이 예방접종하는데 웬일인지 따라나서더라.

마지막 가는 길에 아이한테 베푼 친절이었던거다.

주사 맞히고 나를 집에 내려 놓고는

"잘 있어" 하며 집을 나갔다.

사무실에 가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인사가 저런가 싶었다.

그 뒤 사무실 전화가 끊어져서 연락이 안되다는 시부모의 전화를 받았고

사무실로 뛰어가 보니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남편은 상당한 재력가여서 부동산을 내 친정 식구들 명의로

분산해 놓았었는데 사라지기 며칠 전

갑자기 자기 명의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하였다.

친정 어머니께서 "저놈이 수상하다, 명의 바꿔 주지 마라"하셨지만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니 그가 원하는대로 돌려 주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 사라진 것이다.

 

재혼하고 함께 살은 기간은 꼭 10달.

내게는 7달 된 핏덩이 아이만 남겨졌고

차일피일 결혼신고를 갖은 핑게를 다 대고 미루던 남편놈은

아이 출생신고도 안해 준채 미국으로 줄행랑을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처와 이혼도 안된 상태였었다.

 

나와 함께 사는 동안 통장에 수억을 쌓아 놓고

집도 서울에 3채가 되는 그 놈은 내게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설마 자식이 있는데 생활비를 주지 않으랴 싶어

7개월 이 될 때 까지는 일절 생활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었다.

조심스럽게 아이 분유값도 있고, 기저귀도 사야하니

생활비를 달라 했다.

눈을 똥그렇게 뜨더니 이 놈 뒤로 자빠진다.

"너 나 돈 보고 결혼했니?, 니 통장에 돈 있잖아 그거 써 !"

재혼할 당시 나는 전 남편으로 부터 재산분할로 받은 지참금이 있었고

이 인간은 그걸 생활비로 쓰라는 거였다.

그리고는 한달에 50만원 정도 자기 먹는 하숙비라면서

달랑 그것만 내어 놓고는

"나, 죽어도 니 밥 공짜로 안 먹는 놈이야" 하며 큰소리를 땅땅 쳤다.

화가 나면 18년 소리도 거침없었고

할말 못할말 구별을 못하는 다혈질이었다.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가도 후딱 처먹고는 아이 안고 나가 버린다.

절대 돈 내는 법이 없다.

알고 보니 시댁에서도 "사람이 아니다" 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던 놈이었다.

알뜰하고 성실했던 나를 만나면

사람이 좀 되겠지 싶어 우리의 재혼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시댁이었다.

지금도 시부모는 완전 내 편이다.

 

그 놈이 그렇게 사라진 뒤.

피눈물을 삼키면서 아들을 혼자 길렀다.

한 일년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며 헛소리를 했다.

눈 뜨고 있을 때는 계속 눈물이 줄줄줄 흘렀고

혼자 운전하고 다닐 때 하나님을 찾으면 가슴을 찢는 통곡을 했다.

아이가 첫돌이 되었을 때 주변 교우들이 정성껏 생일 상을 차려 주었고

돌 떡을 그동안 아껴주신 분들께 돌리며 많이 울었었다.

 

2돌이 되기 전부터는 아이들쳐 업고 직장생활을 했고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아이를 데리고 갔으며

심지어는 중요한 고객과의 meeting 에도 아이를 데리고 가야했던 때도 있었다.

다행히 재택근무 시간이 많았으나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아이가 악을 쓰고 울면

아이를 화장실에 가두어 놓고 현관밖에 나가 전화통화를 하는 일도 많았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 자주 터지는 업무라

아이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놀아주지도 못해

아이는 날마다 TV 와 Video 에게 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딸린 내게 누가 일을 주랴, 그것도 감사하다 싶어

밤낮을 쉬지 않고 잠을 줄여가며 성실히 근무했고

일년이 지난 지금 아무 기술 없는 내가

그래도 한달에 250 만원을 받는다.

영어가 많이 필요한 업무인데도 나는 영어가 초보수준이라

그 모든 것을 몸으로 떼워야 했다.

영어 편지 한장 쓰려면 남들 5분에 쓰는것을

나는 한시간쯤 걸렸었다.

지금은 내가 없으면 회사 문을 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너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남편 놈은 LA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소식만 알뿐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으나

아이 내버리고 달아난 놈을 그냥 버려 둘 수 없었다.

미국의 사립탐정을 고용했고(미국은 사립탐정 제도가 합법적이다)

그 놈이 어디 사는지 어렵게 알아낸 뒤

미국의 변호사를 샀다.

미국내에 거주하지도 않는 고객을 위해 일해줄 변호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도했었다.

다행히 그 놈 살고 있는 지역에 가정법 전문 여자 변호사와 선이 닿았고

아이 양육비를 지급하고 출생신고를 해 달라는 내용으로 소송장을 날렸다.

 

또한 한국에도 변호사를 고용하여 그 인간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 두채에

가압류를 했다

우선 9200 만원으로 가압류 결정이 났다.

 

드디어 미국 재판날.

아이를 맡기고 미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놈이 아이와 나를 버리고 도망간지 17개월 만이었고

만가지 감회가 마음을 오갔으나 마음을 강하게 먹고 계속 기도했다.

지금까지 내 눈물을 아시는 하나님..

재판과정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것이 드러나게 해 주옵소서.

나에게 이롭게도 마옵시고, 그에게 이롭게도 마옵시고

공의의 하나님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통해 LA 공항에서 미리 연락된 분들이 나를 돕기 위해 마중을 나와 주었고

숙식도 제공을 받으며 재판정에 갈 수 있었다.

재판정에서 그놈의 주장은 일시에 다 깨져 나갔다.

판사가 묻는다.

"왜 아이 출생신고를 안 해주었냐?"

그놈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다.

"내 새끼가 어디가냐? 18세 되기 전에만 해 주면 되지

저 여자가 이상하게 자꾸 출생신고를 해 달라고 주장한다"

판사가 일언지하에 답변을 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당연히 미국 시민권자로 출생신고될 권리가 있다.

네가 그 권리를 지금까지 박탈하였으므로 당장 아이 출생신고를 해 주라"

그 놈은 끽 소리도 못했다.

내가 아이 출생신고를 해 달라고 그렇게 졸라대면

"이상한 여자 다 보겠네. 내 새끼가 어디가니?  난 출생신고 할줄 몰라"

하고 억장 무너지는 소리 하던 놈이었다.

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했다.

그 놈은 한국 최고라는 K 중고등 학교와 S 대학, 대학원을 다녔고

미국 버클리 대학원에서 석사박사를 다 한놈인데

출생신고를 못한댄다.

 

아이 양육비를 지불하라는 말에

처음 에 한달에 100 불을 양육비로 주겠다고 해서

내 변호사나 지 변호사까지도 자빠지게 만들었다.

끝까지 돈에 지독했던 놈.

지 새끼 입으로 들어갈 양육비 주기 싫어

수백만원씩 주고 변호사를 고용한 미친 놈이었다.

 

그러나 미국 법정은 여성의 편이었고

영어에 서툰 나를 위해 동시 통역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아무런 언어의 불편없이 재판에 들어갔고

결국 그놈은 아이에게 출생신고를 해 주고

매달 650불의 양육비를 아이가 18세 될 때 까지 지급하며

일년에 4번 이상 아이를 방문하여 아버지 노릇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친권을 내가 단독으로 갖기를 원한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아이 버리고 간 놈이 친권을 내게 못주겠다고 버텨서

판사가 실소했고 그런 점들 때문에 오히려

아주 나쁜놈인 자신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결국 친권도  나에게 오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 놈이 전처에게 이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미국 재판이 열리기 몇달 전 전처가 실종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했고 승소하였는데

전처에게도 나와 똑 같이 행동을 했더라.

재산 다 빼돌리고 자식 남겨 놓고 하루 아침에 튀는 그 수법이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은

부동산 취득시 부부공동명의로만 살 수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몇채의 부동산을 갖고 있던 그는

이거 팔아서 딴 것 사면 재산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살살  구슬려서

전처의 사인을 받아 판 뒤

매각 대금 현금 80만 불을 한국으로 전처 몰래 송금하고

하루 아침에 한국 비행기 타고 떠나 버렸던 것이었다.

아이 셋을 전처에게 남겨 두고.

나에게 말하기는 매정한 전처가 자기 돈 다 빼 돌렸었고

그것 때문에 결국 이혼하고 한국에 나오게 되었는데

천저가 자기 나올 때에 쳐다 보지도 않았다고 했던 놈이었다.

난 바보처럼 그런 그가 불쌍했고

여자 하나 잘못 만나 인생 망가진 남자쯤으로 생각했다.

말고 행동이 발랐으며 멀쩡히 사회생활 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몇 달 뒤 재판정의 명령대로 아이를 방문하러 그 놈이 왔었다.

단 하루의 방문이었다.

아이는 애비를 알아 보지 못했다.

"누구지?" 하고 그 놈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으면

아들은 "목사님!"하고 대답을 했다.

내가 신앙에 의지해 살고 있던 터라 남자의 모습을 한 어른은

목사님인줄로만 아는 아들이었다.

 

그 놈은 아이를 방문하기는 했어도

출생신고는 법원의 명령도 무시한채 계속 미루고 있었다.

방문날짜가 정해졌을 때 출생신고할 서류를 챙겨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지만 그 놈은 빈손으로 왔었다.

미루는 것에는 대한민국 1등인 놈이다.

그 뒤 10달 만에 또 하루의 방문이 있었다.

아이가 3돌을 넘기고 있었고 비로소 그때

미국 대사관에 가서 아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영사와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뻔뻔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이 놈이 아들에게 말하더라

"애야, 잠시만 기다려라, 아빠가 미국 시민권 갖게 해 줄께"

주둥이를 뭉개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니.

 

양육비는 절반은 주고, 절반은 건너 뛰었다.

그래도 애 아버지라 원수가 되기 싫어

아무말 없이 기다렸다.

주면 받고 안주면 안 받고.

 

그런데 3달 만에 또 아이를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미국의 전처 소생 아이들이 아버지를 거부해

혼자 살아왔던 놈이 외로움에 지쳐 아들을 찾나 보다 싶어 ok 를 했다.

그래도 애한테는 아버지가 아닌가.

그 노랭이가 가장 뱅기표 비쌀 8월에 방문을 한다니

뭔가 나에게 할말이 단단히 있나보다 짐작되었다.

이번에는 5일을 머물며 아이와 놀겠단다.

내게 행한 소행을 생각하면 얼굴도 마주 대하고 싶지 않지만

아빠 사랑없이 자라는 아들이 불쌍해 내 감정은 눌렀다.

 

공항에 pick up 을 나갔다.

아들을 세번째 보았다고 제법 반가와 한다.

선물도 한개 사왔다.

아들은 낯선 남자가 싫어 내 몸에 착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노랭이가 어떻게 5일동안 숙식을 돈주고 해결할지

그게 미리부터 걱정이 되었었다.

그것이 내 몫이 될까봐서.

그 전 두번의 방문때도 식당에 함께 가면

내가 밥값을 다 내어야 했던 놈이었다.

자기는 달러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돈을 못 내는 이유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공항에서 환전을 한다.

그리고는 밥값도 내고, 방값도 낸다.

아이와 수영장에도 가고 공원에도 갔다.

주차비, 입장료 다 그 인간이 냈다.

생전 받지 못하던 대우를 받으니 마음이 오히려 편치 않았지만

한 3년 혼자 살아 보더니 이젠 돈보다 더 귀한 것이 가정인줄 알았나? 싶었다.

 

아이는 '아빠'라는 단어를 알려줘도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옵빠, 옵빠' 하고 부르며

자기와 잘 놀아주는 낯선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2일째 날 저녁, 이야기 좀 하잔다.

내용인즉슨, 미국에 있는 전처의 아이들이 자신과 살기를 거부하며

미국에서 하던 일들이 다 안되서 생활비 비싼 미국에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한국으로 나와 살겠단다.

그런데 나하고 이야기가 잘되면 같이 사는 것도 방법이란다.

썩을 놈.

싹싹 빌고 같이 살자 해도 받아줄지 말지가 아닌가.

한국의 어디 남쪽에 외국인 마을에 가서 살 준비 다 해놓았는데

내가 지 조건을 다 받아 주면 나랑 살 수도 있다니.

내가 대답했다.

"정말 이 여자 하고 일생을 함께 살 각오가 되어 있고,

이 가정이 나의 인생에있어 가장 가치 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받아 줄 수 없다. 부부가 같이 살려면 애정이 있든지, 신뢰가 있든지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도망갔던 사람인지라

의심만 있고 조금도 신뢰할 수 없으니 같이 사는 것은 안 된다"

 

그러나 그래 그 조건이란게 뭐냐. 들어나 보자 했다.

자기 한입 먹고 사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아이와 나, 가족을 부양할 능력은 없단다.

바꾸어 말해 예전처럼 자기 먹을 값은 내 놓을 테니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살아라였다.

그리고 미국을 떠나 새사업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사업차릴 돈을 반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또 전에 자기가 가출했던 것에 대하여 내가 언급을 하면 살 수 없으니

과거 일을 일절 입에 올리지 말것,

전처 아이들을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가겠다는 게 조건이란다.

 

그리고 자기가 이제 버는 돈이 없어서(통장에 수억이 있으나 까먹으면서는 못 산단다)

내가 가압류한 아파트를 팔아 일시불로 양육비를 지불할테니

8500 만원에 합의를 보자는 이야기였다.

내가 전에 제시한 조건은 9,000 만원이었다.

그 차액 500 만원을 지불 못하겠다고 하여

새벽 3시까지 설득을 했으나 8500 만원에 합의를 못 보면

변호사를 고용해서 본소송을 하겠단다.

그렇게 되면 서로 원수가 될테고 아들도 잃는다,
또한 변호사 비용 들이면 500-1000 만원은 깨지는데

그 돈 아들 주고 인심얻어라 해도 막무가내이다.

이 인간 재산이 현금이 6억이 넘고 집이 이제는 2채이다.

 

일절 사과도 없이 함께 살 조건을 줄줄 늘어놓고

나와 아이 생활비도 못 주겠고

돈 500 만원에 새벽까지 잠 못자고 실랑이 하게 하는 놈이

나하고 같이 살겠단다. 허허허허.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도 모자란 짐승아.

 

날이 밝았다.

 3일 째 되는 날이다.

드디어 이 놈 본색이 나왔다.

아이와 놀이 공원에 가기로 한 날인데 하는 말이

" 나 돈 없어" 다.

어이가 없다.

내게 몇달치 양육비도 안 주고 있는 놈이

평생 처음으로 아이 데리고 놀러 가면서 돈 떨어 졌다는 소리가 어디서 나오노.

니 돈 써라 이거다

이 놈은 가장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한다.

"왜 내가 너를 먹여 살려야 되니?

너 먹을 것 네가 벌고, 내 먹을 것 내가 벌면서 살면 되지

치사하게 왜 남자가 여자를 벌어 먹여야 되냐?"

아무리 작은 것도 자기 혼자 돈 다 내고는 못 사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젠 나도 바보처럼 살기 싫었다.

재혼해서 아들까지 낳았으면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것이 아닌가.

돈이 없다면 내가 벌어서도 살 수 있으나

이건 경우가 그렇지 않다.

내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 버리고 떠나 갔던 놈이

아직도 내 지갑을 열어라하고 있으니 정말 만 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놀러 가지 말지 뭐. 나도 돈 없어. 양육비를 벌써 몇달치를 못 받았는데

내게 무슨 돈이 있냐?"

이 놈 반응좀 보게

"너는 돈에 어찌 그리 지독하냐,

너는 나를 빤쓰까지 벗겨서 다 울거낸 뒤 내 쫓을 년이야.

나 지금 미국으로 돌아가겠으니 공항까지 데려다 줘.

너라는 인간을 이제라도 빨리 알게 된 게 천만 다행이다."

그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짐을 꾸렸고

10분 안에 자동차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놈 소리 지른다.

"니가 이러니 내가 너 한테 안 온다. 소송한 이후로

양육비를 몇달 보냈으면 감사할 줄도 알아야지

예수 믿는 것이 감사할 줄도 좀 알아라

오라고 싹싹 빌어도 안 와!!"

미친 놈. 엊저녁만 해도 같이 살고 싶다고 하던 놈이.

미국은 소송하기 전의 양육비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고

그것을 안 그 놈은 내 앞에서 뛸 뜻이 기뻐하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었다.

 

드디어 나도 폭발했다.

"감사? 뭘 감사할까? 나에게 애 남겨 두고 떠나간 것을 감사할까?

소송한 후로 양육비 몇달 준 것을 감사할까?

소송하기 전에는 니 새끼 아니냐?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구나

이 돈의 노예야, 나하고 같이 살겠다고 온 인간이

와서 돈쓰는게 아깝고 양육비 주는게 아까우면

내 마음이 열리냐?

니가 내게 저지른 죄악이 하늘에 닿았는데

마음을 풀어주고 사과를 해도 받아줄지 말지다.

그 돈 아끼려다 천하에 가장 귀한 가정을 너는 갖지 못하게 된 것 아냐?

네가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세계를 다 돌아다녀 봐도

행복이 있을 줄 아니?

가정이 없는 놈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거야, 똑 바로 알어.

이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아

돈 때문에 부모 인연 끊고, 자식들 다 떠나고

마누라 둘을 얻어도 아무도 너랑 안 살아

관계를 회복하고 싶으면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책임을 다 해!!!"

 

이 놈은 돈 관계가 얽혀서 그 화려한 학력에도

단 한명의 친구도 없고 부모와도 원수로 연락 끊고 지내는 놈이다.

경우와 도리 같은 것은 자기한테 이야기 하지 말랜다.

돈 안쓰는 방법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을 앞당겨  미국에 돌아갔다.

그 놈 가고 난 뒤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다.

남편놈이 온다니까 나에게 돌아와 가정을 이루고 살게되나

기대에 부풀어 계시던 분들이었다.

"아직도 그 놈이 돈의 노예에서 풀어지지 않았구나 !!

그래도 한 삼년 혼자 살면서 가정 귀한 줄 알겠지 조금은 기대를 했었는데.."

하고 한탄을 하신다.

올해 87세가 되신 시부님이시다.

남편 놈 도망 간 뒤에도 나는 정기적으로 전화 드리고

내 아들 데리고 명절에 그 분들 찾아 뵈었었다.

남편놈은 일년 열두달 가도 부모에게 전화 한통 없고

한국을 방문해도 부모에게 연락 안하는 천하에 호로자식이다.

한가지 보면 열가지를 알지.

부모에게 못하는 놈이 처자식에게는 잘 할까.

이 노부모님은 항상 못난 그 아들놈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시는데

그 아들이 회개하고 나와 함께 살게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신다.

나와 함께 사는 것 밖에는 아들의 행복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남편 놈 52세다.

이번에 보니 너무나 깡 마르고 머리가 다 벗겨져서

완전히 할아버지였다.

아무도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나름대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죽을 때 싸 짊어지고 가려는지 그 많은 돈 쓰지 못하고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사나 고민해서 빠졌단다.

 

나는그에게서 돈에 잡힌 인간의 전형을 본다.

물론 그는 꿈에도 그런 사실을 모른다.

자기 사고가 정상인 줄 아니까.

 

내 아들에게는 이틀의 즐거운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지만

그 인간이 돌아가고 나니 어찌 이렇게 마음이 편한지.

이번 주말에는 아들 데리고 가려고 했던 놀이 동산을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