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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한심하고 속상하다......


BY 양철지붕 2005-08-25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며느리다.

며느리라면 다 하는 안부전화

정말 내가 마음 내켜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내 쪽에서 먼저 하는 법 절대 없다.

그래서 가끔 우리 사는 것이 궁금한 시댁에서 시부모 시누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한다.

이럴 땐 나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고 대충 전화를 끊어 버린다.

 

가 마음에 내켜 전화하는 날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왜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시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시어머니 시누까지 다 바꿔 달라고 해서

우리 아기 최근 근황이야기 해주고 남편과 내 근황까지

두루 섭렵하며 수다를 떨고 보면 물 흐르듯 시간이 흘러가곤 하고

핸드폰은 과열되어 뜨끈하다 못해 폭팔 할 듯 뜨거워지곤 했다.

물론 내가 마음이 동해 전화하는 날은 한달에 한두 번 될까 말까하다.

 

시부모님은 당신 속이야 어떠시든 한번도 옳다 그르다 말씀하신 적 한번도 없으시다.

이런 시부모 밑에는

나 같은 어줍잖은 며느리가 꼭 당첨되는 불가사이가 바로 시댁과 며느리의 궁합인 것 같다.

 

왜 갑자기 내가 나쁜 며느리라는 생각이 들었나 하면.......

오늘 남편의 생일이다.

그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들고 끙끙대고 4층을 오르내렸다.

얼마 전까지

관사 1층에 살았을 때는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빌라 4층으로 이사를 오고 보니 한번 출타하는데 온 진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오전 댓바람에 마트에 가서

미역국거리와 잡채거리 그리고 귀엽고 앙증맞은 케잌을 하나 사들고 오니

벌써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런 나를 도와주는 듯 아이가 일찍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시누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부모님께서 오늘이 당신 아들 생일이니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었는지 궁금하신 모양이셨을 것이고

동생이 돼갔고 오빠 생일에 전화를 한통 안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기셨기에

아마도 시켰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댁에서 내게 평소 부담을 주시는 분은 아닌지라 기꺼운 마음으로 통화를 했다.

아기가 깰까봐 속삭이듯 전화를 받는 내게

아가씨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아기가 잔다고 말을 했다.

농 삼아 아기랑 말하고 싶으니 아기를 깨우라는 시누의 말에

나는 웃으며 싫다고 내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다고 역시 나도 웃으며 말했다.

“언니 언제 올 거야?”

“몰라요. 추석에는 태새가 있어 안 되겠고 전후로 주말에 휴가를 조금 더 내서 갈게요.”

“빨리 와. 보고 싶어.”

“난보기 싫은데요. 아가씨가 아기만 더 예뻐해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올케언니가 시누에게 할 대화는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아버님으로 전화가 옮겨가자 나는

“아기 자냐?”

“예....... 지금 아기가 자고 있는 이 순간이 하루 중 유일한 제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이놈이 하루 종일 저 눕지도 앉지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내게

“그래 선잠깨면 칭얼대니 그만 끊자.”하며 대답하신다.

으이그.......

제발 좀 걸러서 말 좀 하지........

도대체 나란 인간의 머릿속 구조는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늘 마음속에 있는 글자들이 고대로 말이 되어 나오는지........

방해 받고 싶지 않다니........

도대체 내 상식으로도

시부모에게 할 소리는 아닌데 어쩌자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느냔 말이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나는 여태 40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한번도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걸러서 입 밖으로 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더러는 오해도 사고 더러는 다툼도 일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옆에 남은 사람들은

내가 원래 이러려니 하고 포기 하다보니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내가 가히 인간성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 어딘가에 여과장치가 특이하게 박혀

이러려니 하고 나를 자신들 옆에 있게 해 주곤 했다.

그런 사람들도

가끔은 무턱대고 내 뱉고 보는 내 말에 제동을 걸고 짜증을 내고 삐지고 화를 낸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변명을 하고 용서해 달라 징징거리고 그래도 안 되면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친우들에게나 할법한 일이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얘가 도무지 예의가 없는 건지

근본적으로 시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건지  하며 생각하시고

속으로 혀를 내두르시면 어쩌나 오늘도 나는 내 주둥이(?)를 쥐어박고 앉아 있다.

그것도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 하실 것이 뻔한데........

하긴 결혼 초에 시고모님께서

‘참 너나 네 남편이나 둘이 똑같이 철딱서니가 없다’하시며 혀를 차신 적이 있긴 하다.

아무튼 지금 정말 속으로야 어떠시던

이런 철딱서니 며느리와 올케를

한없이 관대하게 봐주시는 시가족에게 죄송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