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때 부터 나의 엄마는 정상이 아니였던것같다.
지나친 결벽증 때문에 집청소만 하면 동생과 나는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그때의 엄마는 어마어마한 짜증과 욕설을 우리에게 퍼부었다.
참고로 엄마는 하루중 거의 반을 청소하는데 보낸다.
그리고 아들을 못가진데 대한 보상심리로 큰딸인 내게 과잉기대를 했다.6살때 하루이틀만에 한글 자음을 못익힌다고 쇠로된 설탕그릇을 내게 던져서 아직도 5cm는 되는 흉터가 내 팔에 남아 있다.
그리고 조금 이라도 잘못하면 대나무 막대가 부러지도록 내게 매질을 했다.
그러다가 조금 나은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근처에 살던 이모들과 어울려 다니며 춤바람이 나더니 남자를 만나고 다녔다. 아빠가 출장간 어느날 그남자를 집에 끌어 들여 뭔짓을 하다가 아빠에게 들켯는데 아빠가 가정과 그남자 중 하나를 택하랬더니 그남자를 따라갔다.
그 때 내나이 겨우 14살. 5살어린 동생 돌보기와 집안 살림은 내몫이었다. 당시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난 훌륭한 언니가 되주질못해 내동생은 최종 학력이 중학교 중퇴이다.
어쨋든 그리그리 살고 있었는데 남자와 헤어졌던지 엄마가 돌아 왔다. 돈을 벌러 다닌단 조건으로 아빠가 델고 왔더란다.
이런저런꼴을 보고 나니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그때 부터 없었던것같다. 내 나이 16살에 아빠는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는데 아빠가 출국한지 며칠도 안되 엄마는 또 어떤 남자를 따라 나서서는 내가 다니느 학교 밑 어는 여관에 살림을 차렸다. 나는 바보 처럼 생활비를 얻으러 거길 드나들었다. 그때이미 내 동생은 빗나가기 시작했고 난 그렇게 버림 아닌 버림을 받았다.아빠가 일본에 계신 9년동안 나의 엄마는 그렇게 두남자와 살았다.
내가 20살 되던해에 아주 작은 나이트클럽을 엄마가 차렸는데 거기 카운터를 내게 보게 했는데 하루라도 나가지 않으면 학교갈 차비를 주지않았다. 내동생은 그 때 부터 엄마가 불쌍하다며 돈으로 할수있는건 다 해주며 키웠다. 그래서 내가 단돈 천워을 가지고 학교를 다닐때 동생은 한달에 거의 몇 십만원을 써댔다.
아마 사랑에 목말랐던지 나는 우리집 웨이터와 눈이 맞고 말았다.
지금의 나의 남편이다. 남편이 그리 큰 능력이 없어서 친정에 세를 들어 사는데 옛날 그리그리했던 사연들은 다 잊고 내게 큰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하라며 나날이 나를 들복는다.당연히 사위도 맘에 안들터 눈에 가시 취급을 하며 우리 부부 에게 조금만 화가나도 막말과 욕설을 서슴치 않는다. 서른하고도 일곱 우리부부는 동갑인데 그런 우리를 자기 발톱에 때만도 안여긴다. 그래도 엄마라고 나는 한다고 하는데 .....
정말 사는게 힘이든다. 나가서 살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가 않다.
그래도 이악물고 살아볼란다. 언젠간 좋은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