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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새댁이 사는 법 3


BY 서울 늙은 새댁 2006-02-03

 

혼수상태 신혼기


20대 꽃띠 학생부부도 아니고 30대 중반넘어 부모 등골 파먹는 노학생 부부, 이게 저와 제 남편 신혼기 타이틀입니다.


결혼 얘기 첨 나올때 남편은 논문학기 였고 지도교수도 이번엔 졸업해야지 그러믄서 외국갔다길래 저희 결혼할 때 쯤이면 졸업하고  밥벌이는 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저도 결혼 무렵 가게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마지막 학기였구요. 남편한테 그랬습니다. 어차피 가게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한거였고 할만큼한데다가 다른길 갈라고 가게 남한테 맡기고 나이먹어 대학원 간거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일은 다른거니 가게는 고마 접을란다, 나 논문쓰고 취직할동안은 난 돈 못번다, 당분간 니가 나좀 전적으로 먹여살려라 마. 나도 나중에는 내 용돈이랑 니 술값은 벌어주꾸마.(제 전공이 졸업하고 나와도 돈 잘벌수 있는게 아닌지라)

남편, 오케바리. 근데 한달에 얼마 벌어주믄 될까?

얼마 벌 자신있는지 모르겠다만 걍 내 등골만 빼묵지마라. 니가 몸져 누웠다거나 해서 피치 못할사정이믄 내가 포장마차에서 국수라도 말어 너 벌어먹여 살린다만은 1차적으로 생계부양자를 남성을 모델로 하고 여자들 노동력은 예비병력 정도로 아는 나라에서, 임금노동시장에서 남자가 훨씬 유리한 나라에서 내 등골까지 빼 바치진 못한다, 알긋제?

걱정하지마, 나 돈 많이 벌어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옷도 사주고 손에 물 안묻히고..

하이고, 공수표도 참말로 올드버전으로 날린다. 손에 물 안묻히게 해준다카는게 고무장갑 사 끼라는거 내가 모르는 나인줄 아나,쯧.니캉 내캉 손에 다 같이 물 묻히고 살자. 그게 인간답게 사는기라.


머 이런 이바구 주고받을때만해도 우리가 캥거루족 할줄은 몰랐지요. 근데 결혼 날짜 잡고나서 남편 논문 딜레이 되고 제 가게도 IMF때보다 더한 불경기니 어쩌니 말 나올때 내놓아서 가게도 안나가고 결혼 하고도 몇 개월을 붙잡고 있다가 보증금정도 건지고 겨우 팔았으니.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는 시대에 거꾸로 젊지도 않은 나이에 남자하나 건지고 가게를 날렸으니, 참.

(보증금은 혼수비용 빌린거랑 100만원도 차이 안나는 돈이었고 20대 후반 이후 청춘을 바친 가게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던날 위로주 사주는 남편 붙잡고 펑펑 울었더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여보, 너무 속상해하지마, 평생 적금 통장이 있잖어...고마웠슴다, 이맛에 결혼하나 싶었고. 근데 이 평생적금 통장, 졸업하고도 6개월을 백수로 보내서 둘이 손잡고 은행가서 마이너스 통장 만들었슴다)


우야든동 둘다 나이가 많으니 어서 결혼이나 하라는 주위의 성화에 일단 결혼식은 올렸고

‘걱정마, 원래 울 엄마가 작년부터 생활비 대줄테니 졸업 전에라도 결혼하라 성화였어’ 우짜고 하는말에 저도 철판깔고 신혼여행 신나게 갖다왔지요. 신혼여행 갔다와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시집에 가니 듣도 보도 못한 제사상 비슷한게 차려져 있고 손님들이 와계시더군요. 새 사람 들어왔다고 뭘 고하는 상이라던데. 암튼 혼수상태에서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울 아버님 절하면서 새사람 들어왔습니다, 아버님..고하시며 왈칵 눈시울을 붉히시는데 가슴이 짠하면서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제사상 비스무리 한거구나, 제사가 죽은자와 산자 모두를 위한 위로의 의식일수 있고 꼭 제사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도 아닌지도 몰라..하는 제법 여유로운 맘까지 생겨나더군요.(원래 몰르면 용감하다고 하지 안습니까.멀 몰라도 한참 몰랐으니깐요^^)


둘째날 시집에 다시 내려가서 부엌 살림을 보니 어렸을적에 엄마 몰래 가스불에 뽑기 해먹다 태워서 몰래 버렸던 양은 국자가 오롯이 걸려있지를 않나 참, 이 분들이 검소하게 사셨구나, 이렇게 알뜰살뜰 사시고 아껴서 아들 결혼해서 살 집도 장만해주고 나도 그 덕을 같이 보는구나 죄송스럽고 감사하더군요. 그리고 어머님이 연로하신 나이에 아직도 일을 하셔서 우리 생활비 대주시는데 나도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래 제가 시작한게 주중에 두 번 반찬 만들어가서 어머님, 아버님 저녁 차려드리고 같이 밥먹기, 일요일 저녁에는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한상 차려서 대접하기 이거였습니다.


뭐 이 정도는 해야되는게 당연한거 아니겠나 싶었지요. 제가 또 선머슴 같이 구는 것 같아도 요리하는걸 좋아합니다. 게장, 갈비찜 정도도 척척 해내는 실력인데다가 도전정신, 실험정신이 강하기도 하구요. 학교 가는 남편 아침마다 환상적인 도시락 싸주고 나서는 요리책 보면서 반찬 뭘루 할까, 뭘 해서 시부모님한테 맛난거 해드리고 이쁨을 받나(켁~) 궁리하는게 일이었지요. 울 어머님은 바깥일을 평생 하신분이 되나서 미식가인 아버님이 만족은 못하셨던지 며느리가 요런저런 맛난 재료에 온갖 솜씨 다 부려서 바리바리 반찬 싸가지고 내려가 앞치마 둘르고 아버님, 어머님 해가며 밥상 차리니 입이 귀에 걸리시더군요

(원래 시아버님들 아들 장가보내고 꾸는 꿈중에 젤 큰 판타지가 며느리가 앞치마 둘르고 아버님 아버님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거라면서요. 클). 밥상 머리에 앉아서는 당신들 평생에 첨 결혼 시킨 자식, 며느리가 우찌 사는지 느무 궁금해서 모든 신경, 관심이 저희한테 쏠려계신걸 아는지라 밥상 머리에 앉아서 친정에서 어렸을때 하던 식으로 남편이랑 뭔 재미난 일이 있었나 조잘조잘 떠드는것도 잊지 않구요.


제가 반찬 만들어 내려가는날은 아버님이 시누이한테 전화 걸어서 **가 맛있는거 많이 해왔다. 일찍 들어와라 그래도 시누가 늦게 들어오면 상 한번 더 차려주면서도 다 이뻐라 하시니 저도 좋데요, 클. 반찬도 머 대충 합니까. 조기찜을 한다면 특제간장(옥수동, 방배동 선생 요리책에 나오는 그런 간장^^)으로 조리고 파채 송송 썰어올리고 실고추로 고명 올리고 우짜고 할수 있는 요란은 힘 닿는데까지 떨었습니다. 요리하다 실패하면 다른그릇에 옮겨담고 잽싸리 재료 더 사다가 다시 만들기도 했고.ㅋㅋ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되 시어머님 생신이셨습니다. 남편 친가 한번 모이고 외가 한번 모이는데 친가는 집안 어른이 새애기 고생한다 외식하자시어 밖에서 해결했는데 외가는 제가 또 이쁨 받을라고 나서서 제가 집에서 차린다 했습니다. 식구, 손님 다 해서 20명 가까이 되니 아버님이 사람 하나 모셔서 도움받으라는걸 ‘아뇨, 제가 한번 해볼께요 아버님’ 그러니 우리 아버님이 그러시더군요 ‘겁도 없구나...’

혼수상태에 뭔 겁이 나겠습니까.(그리고 원래 제가 겁이 없습니다) 흘흘. 뭘 그렇게 잘한다 소리가 듣고 싶었는지, 그렇게 오버하다가 나중에 뒷감당 어찌 할라고 그랬는지.

큰소리 땅땅 치고는 고양이 손보다 겨우 나은 남편이랑 손 맞춰 가며 손님을 치러냈습니다.

시누이, 시어머님한테도 올라오실 필요 없다 큰 소리 땅땅치니 진짜로 안오시데요.




그 당시에 제가 얼마나 혼신을 다해 이쁨 받는 며느리 콤플렉스에 걸렸었는지.

남편 왈, 당신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것 같어. 놀랬어. 너무 페미 발톱 감추고 있는거 아녀?

친정 아빠 왈, 너 너무 첨부터 오버 하는거 아니냐? 잘하니 다행이긴 하다만. **이는(울 올케) 가까이 살면서 그런것도 없으니..

그러게, 아빠. 나도 시부모님 가까이 사시니 아무래도 자주 찾아 뵙게 되던데 올케가 쪼매 느긋하긴 하지?..(지금 생각하면 하이고, 그저 제 조디가 방정이지요)


이쁨 받는 며느리를 지향하면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건 인생선배, 결혼 선배님들 말 하나 틀린거 없다는걸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뼈저리게 깨우치면서부터입니다. 울 시부모님 저를 딸처럼 여긴다 하시더이다. 저도 잘하고 이쁨받는 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근데 제가 시집 부엌에서 그리 종종거려도 울 시누이 한번을 설거지를 안하더이다. 똑같은 딸이라면서 왜 저는 맨날 밥상 차려 바치고 시누이는 그까짓 그릇 몇 개를 나 밀쳐내고 한번을 안 씻어줍니까. 울 어머님은 왜 맨날 쟤는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클났다 말만 하십니까. 저는 뭐 첨부터 잘했습니까. 요리야 숙련 노동이라 치자구요. 설거지는 가르치니 울 남편도 잘만 합디다(오래 걸려 그렇지).

또 남편이랑 둘이 먹는거면 요리가 좀 덜 맛있거나 실패 해도 어떻습니까. 근데 시부모님 드릴꺼는 신경이 두배로 쓰이니 1주일에 3번 메뉴짜고 난리를 쳐대는것도 나중엔 부담스럽더군요. 메뉴도 바까야지요, 하다가 실패하면 나 혼자 먹어치우고 다시 만들어야지요.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무척 신경쓰이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결정적인 사건.


일명 눈물의 갈치와 멸치젓갈. 그날도 아버님 좋아하시는 갈치조림과 매운탕외 몇가지 반찬을 만들어 시집에 내려갔습니다. 울 어머님 검소하신건 좋은데 없는집도 아닌데 어떨때 보면 너무 아끼시는 분입니다. 그날 반찬이 많으니 갈치는 나중에 먹자 시길래 어머님 그래도

아버님 좋아하시니 상에 놓아요 그랬더니 아버님만 드리자며 꼴랑 한토막을 당신들 앞에 놓고 드시더이다. 며느리 먹는거 아까워 그런거 아닌줄 압니다. 근데 그 순간 저는 제가 역시 딸은 못된다는걸 알았습니다. 제가 딸같았으면 엄마 나도 먹을래 이러면서 한토막 척 갖다 놓고 먹을걸 시부모님앞에서 그 말이 안나와 젓가락도 못댔으니 제가 딸 아닌거 맞지요. 이리 어려운게 시부모님 아닌지요. 그리고 하필 그날 아버님이 하얀 갈치 속살 한점을 젓가락에 꿰시고는 ‘파는 젓갈 내 보니깐 아주 드러워서 못먹겟드라. 멸치 젓갈 한번 담아봐라’

허거덩. 멸치젓갈? 아무리 제가 나이가 늙었어도 명색이 신세대요 새댁인데 뭔 멸치 젓갈을 담을줄 알겠으며, 요즘 세상에 노인네들도 안담아먹는 젓갈까지 담아야 한다는 것이며, 더욱 심사가 꼬이겠는 것은 당신들 딸, 아들은 공부만 하라 카고 암것도 시키지 않아 할줄 아는게 항개도 없고 설거지 한번을 니가 해라 안하시면서 시집온지 몇 달 안된 며느리한테 젓갈을 담아봐라 하시는지요....


인생선배님 말씀이 귓가에 종소리처럼 울려퍼지더군요. 30을 하면 50을 하라하고 50을 하는데 80은 왜 못하냐는게 시집식구다. 착한 며느리 소리 듣겠다고 오버하지 마라.댕그렁 댕그렁~

그날 남편한테 맥주 한병 사가고 들어온나 시켜 갈치 두토막 꾸워서 맥주 안주로 갈치를 구워먹었습니다. 맥주먹으면서 나 서운타 남편만 갈궜습니다. 남편은 중간에서 어찌 하더냐구요? 별거 없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염장만 지릅니다. 염장을 어떻게 지르냐구요. 그해 겨울에 김장을 담는데 나보다 한살 많은 시누이 딸이라고 꼴랑 하나면서 평생 그날 처음 김장속을 넣어 본다하더이다. 것도 내가 추석에 한번 맞장 뜨고나서 내 눈치 보여 생긴 변화입니다. 그날 첨 속 넣는 시누이 보고 남편 외숙모님이 **이 니도 앞으로 배워라 하니 울 철 없는 시누이가 그럽디다. 나 나중에 **이(저)가 담으면 그거 사먹지 뭐, 나한테 나중에 팔어 응?....나는 돈이 없습니까. 김장 장사하게. 울 시어머님 철없는 시누이가 삑사리 내니깐 며느리 눈치보여서 하신다는 말씀이 사먹어, 사먹어 뭘 얼마나 먹는다고 담가먹어. 컥.

저 그때는 웃으면서 할말 하겠다고 맘 바꾼때라 그랬지요.

어머님! 저는 담가야 되고 언니는 사먹어도 되요?! 사람은 좋은 어머님 아차 싶으셨는지 물색없이 웃으시며 너는 요리하는걸 좋아하잔니......할말 있지만 걍 웃었지요.

남편 가만히나 있지 ‘하여간 ㅇㅇ들은 안되’(시누이 직업 들먹이며...잘나가는 전문직입니다)

나 참, 김장이랑 잘나가는 전문직업이랑 뭔 상관이 있습니까. 그 말할 때 표정이요?  잘나가는 시누이 자랑하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날 저녁때 남편 또 갈굼 당했습니다.

니가 내 서방이냐, 남의 남방이냐? 말이냐 막걸리냐? 엥? 그기서 ㅇㅇ가 왜 나오냐?



횡설수설이 너무 길어졌슴다. 남편 올때 되서 서둘러 마무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