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렇듯 여성을 억압하고 때로는 착취하는 구조를 고수하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어떻게 볼 것이며 과연 이를 대체할 가족의 모습은 무엇일까? 여기 그 해답은 아닐지라도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 하고자 한다.
여성의 연대에 관한 따뜻한 시선 <안토니아스 라인>
<안토니아스 라인>은 83년, 역시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의 분노를 파괴적으로 표현한 <침묵에 관한 의문>으로 데뷔한 여성 감독 마린 고리스의 96년 작으로 이런 여성문제의 해답을 명쾌하고 즐겁게 보여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여성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지도 않고 어떠한 전선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생활 속에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평등의 상을 보여주며, 삼대에 걸친 여성의 당당한 삶을 조명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네덜란드의 한 시골마을, 안토니아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여섯 살 된 딸 다니엘과 몇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사망 후 농장을 물려받은 그녀는 마을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녀를 반기는 것은 소꿉친구였던 ‘굽은 손’과 젊은 시절 연인 사이였던 바스 뿐, 마을 사람들은 그저 무심하게 그녀들을 맞는다. 그녀들은 마을의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안토니아의 딸은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고 아이가 키우고 싶어 졌을 때 아이를 낳아 키운다. 여기에 남성의 힘은 필요하지 않다. 결혼으로 자신을 얽매지도 않는다. 안토니아는 자신의 아들을 키워 달라고 요구한 남자에게 아들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잡일을 거들어줄 남자가 필요할 뿐이다. 기존의 불평등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부정하는 완전히 개방되고 평등한 공동체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안토니아스 라인이라고 불리는)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늘어나기 시작하지만 그 누구도 가부장적 권력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소통하며 사랑을 하며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공간에 대한 위협에는 결연히 맞선다.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안토니아의 가족에게 사랑과 시련, 그리고 탄생과 성장, 사망이 이어지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손들을 통해 또 다시 이어진다. | ||||||||||
즉, <안토니아스 라인>은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 및 질서를 거부하고 바꾸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남성이란 의미 없는 개념이며 그들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그들만의 진정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사회 통념 때문이고, 그들이 요구하고 바라는 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이다.
영화는 위와 같은 과정을 아주 유쾌하게 보여주지만 그들의 공동체와 주위의 여타 가정과의 대비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지나치게 동화적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것은 물론 영화 자체의 설득력을 약화 시킨다. 안토니아를 이해해주는 남성들과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환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지 안토니아의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이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신화이고, 전설이며, 더 나아가 역사로서 이야기 되고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안토니아스 라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명쾌한 주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생활 속에서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해온 구태인 가부장제를 극복하는 길은 이것을 구성하고 조직해온 체제를 전복함에 있지 않다.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답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하는 적은, 바꾸어야 하는 편견은 생활 속에 있으며, 역시 동지도 생활 속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가족에게 말을 걸어 봄이 어떨까, 생활속의 투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