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결혼 첫해 추석 아침
한 해에 결혼 한 동서와 나는 큰댁에 가기위해 다 차려 입었던 옷을 벗어야 했다.
이유는 무릎이 보일듯 말듯한 내 원피스가 짧다는 것.
동서가 새로 산 젊잔은 가을 임신복이 화사하지 못하다는 것.
남편이 결혼전에 직접 같이 고른 옷이고 마음에 썩 들어하던 것이라
그냥 입으라고 했다.
어머님은 파르르 떠셨다.
결국 나는 한복을 입고 동서는 처녀때 입던 레이스 달린 헐렁한 흰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결혼 무렵 너무 많이 갈라져서 짧은 컷트를 한 내 머리를 만지작 거리시며 뭐라고 불편해 하셨다.
7년 전, 강원도에 잠깐 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올때.
사택비가 너무 작은데 보탤돈도 없어서 3일동안 발품만 팔다가 주말이
되었다. 둘째 아이가 워낙 약한데 감기까지 들어 미열과 콧물이 계속되어
시댁에 두고 전세를 보러 다녔다.
마침 그런 일이 있어서 서울에 온 그 주말이 고등학교, 대학을 함께 다니고
한때 퍽 가까웠던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미리 친구들과 연락하여 그날 다
보자고 하였다. 결혼 후 시집살이, 남편살이에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내가 보자하니 친구들이 모두 무조건 오겠다했다.
5-6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지만 나는 5-6년 전에 입던 그정장 한벌뿐이었
다. 그래도 허물없는 친구들이니 마음을 달래며 화장도 하고 처녀때부터 매
던 핸드백도 깨끗이 윤울 내었다.
남편이 들어왔다.
'엄마가 집보러 가자하시네'
'그럼 애들은 ?'
'데리고 가지 뭐'
한겨울에 열있는 아이를?
어머님은 남편과 집보러 다니시며 좋아하는 칼국수를 사드시고 오셨다.
난 옷을 갈아입고 앉아서 오랫만에 칠한 마스카라를 눈물로 씻어냈다.
지금
6개월간 우리집에 계시겠다고 오셨다. 아버님은 답답하시다며 얼마지내다
먼저 돌아가셨다.
우리교회에 서로 아주 가까이 지내는 집에 초상이 났다. 장례 전날 위로차
예배를 드리기로했다.
어머님 성품을 아는지라
'어머니 내일 장례식은 어차피 제가 가야하니 오늘 저녁에 어머니께서 다녀오시지요'
'네가 갈자리인데 네가 가야지.'
그래서 내가 다녀오고 어머님께서 아이들을 보셨다.
다음날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오다가 장을 보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애들 데리고라도 가야지? 난 그래서 어제 밤에도 못갔어.'
'우리 어머니 계시니까 우리집에 두고 같이 가자' (우리 가끔씩 서로 애들
봐주지만 간식 한번 챙겨주는 것 빼고는 들여다 볼 일이 없다. 두 집 아이들
이 다 얌전하고 착해서 조용히 잘 논다)
집에 오니 남편이 그런다.
'엄마도 같이 가고싶으시다는데..'
이젠 나도 안다. 저녁 모임보다 장례식에 가실 계획이셨던 것이다.
나도 이제 좀 지쳤다.
'어제 저녁에 다녀오시라니까 아니라구 하시고 오늘 그러시면 어떡해.'
'어른이 가시겠다 한마디 하시면 그걸로 끝이지 어디다 토를 달아.'
'항상그러시잖아. 의견 여쭤보면 아니다 됬다 하시고 나중에 곤란하게 하시고'
'한번 두번 겪어?(화를 낸다)' '애들 데리고 다 가자.(좀 미안해한다)'
'무슨 장지에 애들을 데리고 가. 그리고 ㅇㅇ이네 애들도 우리집에 오라고 했단 말이야. 그냥 내가 집에 있을께.'
그 댁과의 사이에 도리가 있는데 참 죄송하게 되버리고 말았다.
자꾸만 장례식 후 어디서 식사하는냐고 물으실때 알았어야 했는데......
12년을 겪고도 아직도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세상이 인간 관계 속에서 돌아가는 줄 알고 살던 나는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만 도는 두 사람을 만난 후로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
(래도 남편은 배운사람이고 요즈음 사람이라
동생말처럼 십년 공들인 보람이 있다.)
모든게 궁금하고, 뭐든지 다 알아야 하고,
아들집 이사짐도 어디 놔야할지 정해줘야 하고,
먹는 것은 아이들 마시는 주스라도 한입 뺏어서 마셔봐야하고,
아들은 정신적인 남편이고,
내 것은 볼펜 한자루도 손해 안보아야하고,
돈이나 무엇을 받는 일이면 그렇게 끔찍한 아들 체면이 상해도 찔러서 받아와야 하고,
모든 사람은 인물로 평가되고,
서운하면 파르르 떨고,
온 가족이 그 눈치만 보고 살아도 아무도 자신을 위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고.
허기는 밥을 국에 말으라면 안말고는 어쩔 수 없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새침하게 무뚝뚝하게
같이 앉아서 긴이야기도 안나누고
사근사근 비위맞추고 하지 않는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다.
혼자 삼키며 시어머니 똑 닮은 그 아들 수발까지 십여년, 병들어 이모양이
되었는데 더 이상은 못하겠다. 눈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운게 솔직한 심
정이다. 속병드니 자식들에게 짜증부리고 인상도 피곤해지고.... 못하겠다.
세상에는
소문난 시집살이
누구나 하는 시집살이
누구나 아는 시집살이
무늬만 시집살이 등이 있다.
허지만 같이 안살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시집살이가 있다.
유일하게 내 처지를 조금 아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말했다.
'어떻게 너같이 할 수 있겠니. 난 네 이야기 듣다보면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
는 없다싶어. 소문난 시집살이가 차라리 낫다더니 그말이 맞구나.'
욕하고싶으면 하세요 아컴님들.
하지만 시어머님의 성품외에 우리 시댁의 형편과 제가 해온 역할을 다 열거
한다면 모두들 그 친구처럼 말할겁니다.
'내가 우리시집에 너처럼하면 상석에 앉아 절받고 살꺼다.'
정말 속상해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