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타고 다니는 차가 지난 몇 달 동안 꽤나 애를 먹였다.
주행계는 19만 키로를 넘어섰고 털털거리면서 달리는 차를 운전하는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출근 길에 도로 중앙에서 시동이 꺼졌다.
뒤에서는 계속 빵빵거리며 손가락 질을 한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휴대폰으로 보험회사 긴급 출동반에 연락하니 15분 쯤 뒤에 나타났다.
여기저기 점검하더니 견인해야겠단다.
또 지각이다...금년 들어 벌써 몇번째이던가...
후배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창피하다.
나이 어린 후배도 나같은 차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집안이 얼마나 어려우면 나이 많은 선배가 저런 차를 끌고 다니나...하면서 속
으로 흉보는 것만 같다.
금년들어 수리비로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자동차 영업소에 가서 물었다.
(나) 1995년식이고...오토고...SOHC이고...그러면 지금 팔면 얼마나 받나요?
(영업소 직원) 글쎄요...음...50만원 정도밖에 못 받으시겠네요.
차 고장으로 인한 지각은 그렇다 치자.
만약에 이런 노후 차량을 몰고 다니다 사고라도 나면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아내만큼은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그런 걱정 전혀 하지 않는다.
차 얘기 꺼내 봐야 돈 나갈 게 뻔한데 내가 먼저 입을 열 필요가 뭐 있느냐는 속
셈인 것만 같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차 얘기를 꺼내던 나도 아내의 그런 자세가 미워져 요즘엔 차
얘기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어제는 그랜저를 알아보려 현대자동차 대리점에 갔다왔다.
밤에 그 얘길 아내에게 할까말까하다가 해버렸는데 반응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차 사봐야 퇴직하면 애물단지 될텐데 작은 차나 중고차를 사란다.
나도 큰 차 부담스러운 줄 안다.
나도 중고차 사면 돈 절약되는 거 안다.
그러나 정년까진 아직 몇 년 남았는데 후배들 눈도 있지 않은가...?
자동차 크고 작음으로 남편의 인격이 결정되는 게 아니지만 살아가며 우리네 맘
속에 자리하고 있는 차에 대한 인식은 그 누구가 부정한다 해도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 나도 요즘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나 그 수준의 다른 차를 생각 안 해본 게 아
니다.
차라리 부담없이 저런 값 싼 차 사가지고 끌고 다닐까...?...하는 생각 수없이 해봤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이러다 또 다시 차가 말썽을 부릴까 무섭다.
아침 출근 길에 "제발 아무 일 없이 회사에까지 갈 수 있기를..."하며 마음 속으로 빌
며 시동 거는 내 심정을 아내는 모르는 것 같다.
다 좋다.
차 얘기는 그만 하자.
퇴직하면 애물단지 될 게 뻔한 큰 차를 뭣하러 사느냐는 아내 얘기에 요즘 속이 많이
상해 있다.
수십년간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회사에서 젊음을 바쳐 일 해 온 남편의 퇴
직에 대한 인식이 서운하다.
여보, 30년이라는 긴 세월...우리 가정 위해 고생해 온 당신 정말 고마워.
그동안 벌기만 했지 맘 놓고 돈 한 번 제대로 써보진 못했으니 좋은 차 하나 사가지고
편안하게 운전하며 그동안 바빠서 가보지 못한 좋은 곳으로 여행 좀 다니면 어때?
이런 따뜻한 아내이기가 그리도 어려운걸까...?
아내의 그 말을 "퇴직하면 남편이 애물단지가 된다"는 말로 해석하는 내가 잘못일까?
아니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한 아내가 잘못일까?
이 땅 위의 아줌마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몹시 궁금하다.
이런 글...아저씨닷컴에 올리는 게 맞다는 건 알지만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욕심
때문에 여기에 올린다.
[이 점,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