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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정한 며느리인가, 아님 나의 한계인가


BY 호호아줌 2007-02-26

어제는 맏시숙 기일이라 큰집엘 다녀왔다.

시가가족은 3남1녀이고 86세의 시모만 혼자 사신다.

 

아들기일이라 시모는 참례를 하지않아 시모를 뵈려갔다.

막내인 우리가족만 시댁과 3시간거리의 소도시에 살고있다.

방2칸에 거실겸 주방이 달린 주택에 살고계신 시모

현관안에 들어서자 특유의 노인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 냄새가 역겹다기 보다 어떤 울컥함이 내 가슴을 친다.

 

모든 한국 어머니가 다 그렇겠지만 유별스런 자식사랑과 까다로운 성품, 깔끔한 생활을 하시는 시모였는데 백발이 성성한 머리며, 노인냄새,풍기는 생활공간이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노인 인가보다.

 

늙으신 노모를 홀로 사시게 하는 자격지심 탓인지 시모를 뵈려 갈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특별히 내가 착한 며느리여서도 아니고 내가 나서서 시모를 모시지 못해서 마음 아파서도 아니다. 어쩔수 없는 한국며느리 컴플렉스때문이리라.

 

시모는 우리가 당신을 뵈려 갈때마디 되뇌인다.

마치 내 마음 약한 부분을 헤집듯이

 

"이젠 아무것도 못하겠다. 눈도 침침하고 정신도 하나없고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시모에게 난 왜 선듯  "어머니 저희집에 오세요. "

그런말을 못하는걸까? 무엇이 두려운가.

그런말을 듣고도 난 못 들은척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얼른 흘려버린다.

물론 남편은 나의 반응을 훔처보지만 난 딴청을 피우고 어떤 측은 지심의 발로에 동조하지 않는다.

 

이미 큰 동서는 애씨당초 시모에 대한 의무는 물건너갔다.

큰 시숙이 살아있을때 부터 큰 동서는 시모를 소 닭보듯이 대했다.

혼자계신 시모에게 일원땡전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다.

차로 10분이면 시모를 볼수있는 거리에 살았지만 일년에 한번은 커녕 전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숙이 살았을 때에는 명절두번 시부기일때 한번 가족이 모였지만 시숙이 없는 지금 그나마 모이는것이 여의치 못하다.

 

그리고 둘째형님은 시숙이 백수다.

동서가 직장을 다녀 그나마 생활을 한다.

그것이 그댁의 아킬레스건이다. 시숙이 벌건 동서가 벌건 어느누구든 능력있는 사람이 벌고 살림은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할수 있는것 아닌가 헌데 둘째 동서는 이 세상에서 여자는 자기혼자 생활전선에 뛰어든 사람처럼 기고만장하는 사람이라 둘째시숙은 고양이앞에 쥐다.

 

그래서 결국은 제일 만만한 사람이 나다.

명절에도 제일먼저 가서 음식장만하고 시모생신도 음식준비 다 해가서 시모집에서 가족들 다 불러서 먹이고 뒤치닥거리 다하고

그거 다좋다. 난 그런거 그렇게 나혼자 힘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장 한가한 내가 몸으로 약간의 실비만 제공하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그렇게 20여년을 하다보니 시모생활비도 내부담, 병원비도 내부담,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비도 내부담으로 고착되어져 있었다.

한번도 싫은 내색 왜 나만 며느리냐는 투정을 형님들에게 내비치지 않았으니까

그런 내게 시모도 만만해져서일까 아님 길들여졌나

뻑하면 자신의 뒷 수발을 은근히 책임져 달라는 암시를 주고 나만보면 징징거리며

이젠 이대로 더 못살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런 시모의 눈물겨운 매달림에 난 매정스럽게도 반응을 하지않는다.

난 정말 나쁜며느리인가

피도눈물도 없는 며느리인가

이제 더 이상은 혼자 못살겠노라고 외치는 시모에게 난 귀를 막았다.

자꾸 그러다보면 마음 약한 난 시모의 간구를 들어줄수 밖에 없지 않을까

두렵다.

난 죄의 낭떠리지에 떨어진다 해도 난 시모를 오시라고 하지 못하겠다.

혼자 징징대며 사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측은하지만

난 그렇게 착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시모를 사랑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