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지 10년이 되어 아이도 10살이 되었다.
친정 부모님은 잘못을 하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
어려서 언니들과 맞으면서 큰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예의를 강요당하고 너그러움보다는
가족에 맞추어 살아야 했다.
그때는 시골생활이 즐겁기도했기에 그렇게 길러지고 살았다.
때로는 그생활에 만족도 했던것 같다.
학교통학거리가 1시간이 걸리는 곳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흰구름이 떠있으면 그위에 올라가 실컷 자고싶다. 집에 가기 싫다등
많이 생각했던것 같다.(집에 오면 아버지가 일을 많이 않하시기에 언니들과
매일 해야할있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고무줄하고 노는데
우리 자매들은 집에 늦게 오면 혼나가며 일을 해야했다)
그러다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면서 오빠와 자취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 힘든 3년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잘못을 하고 반항을 하면 매를 종아리만 때리셨지만,
오빠는 자기 기분나쁘거나 자기가 정해놓은 기준에 어긋나면
매일밤 매를 맞고 잠을 자야 했다. 닥치는 대로
심하게 때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시골집에 가서 동생이 공부를
너무 않해서 때려주었다고 도리어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것처럼
미리 부풀려 나의 험담을 하곤 했다.(할머니가 나중에 얘기해서 알게되었다)
가출도 생각을 했었고, 자살도 생각을 했었던 사춘기의 고민이 아닌
남이 보면 아무 걱정없이 사는 아이 같았지만 저녁에 학교에서 자취방을
갈때 방에 불이 켜있으면 두근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인권도
보호받을 권리도 없이 부모님의 방관아래 그렇게 3년을 지옥같이 살았다.
그이후 버릇이 남의 눈치를 보고 살게 된것 같다.
지금의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속이고 있는 부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매를 맞고 살지 않았다.
다만, 나를 때리던 오빠가 결혼을 해서 전세금이 부족하다 하여
바로 위에 언니(은행원)와 오빠 집에 살면서 또 힘들게 살았다.
나는 폭력에 길들여져 오빠가 때렸을 때 반항하지 않고 묵묵히 맞아서
적게 맞았었고 언니는 힘도 좋고 당당하고 맞서는 성격이었다.
지긋지긋하게 함께 살다 언니와 집을 구해서 분가를 했다.
그런데 불쌍하게도 두달도 살지못하고 언니가 갑자기 죽었다.
병명은 뇌염, 야유회를 갔다가 들쥐같은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했다한다.
병원에 입원한지 20일만에 갑자기 허무하게.
아직도 나는 새벽에 잠을 깨면 너무 슬프다.
사랑도 많이 받지 못한 언니인데...
그러다.
28살에 남편을 아무 겁없이 만났다.
내가 그렇게 살았는데도 무서운 사람인지,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인지
따져보지 않고 결혼했지만,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났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고통을 모두 이해해주고 보듬어 줄수있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그아이를 자꾸 나도 모르게 때리게 되는 거다.
아이에게 매를 들고 나면 가슴이 아파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다.
남편은 교대근무를 해서 밤에 회사근무를 하고 아침에 온다.
나는 자꾸 밤에 아이 공부시키다 그아이를 때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자꾸 맞서 반항을 하고 나는
때리고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아직까지 아이는 성격이 온순하고 삐뚤어진 구석은 없는데
나처럼 상처를 받고 살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나는 요 몇칠 너무 우울하다.
이유없이 화가 나고 너그럽지 못하게 행동하고.
내마음을 내가 잡아야 하는데 내마음은 이세상 어디를 떠다니는지 모른다.
우울증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