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28

추석. 그 빌어먹을 드라마의 피해와 희망


BY 단한번의 기억 2007-09-14

시댁은 기도교 식으로 명절을 지낸다. 혹시 기도교 식은 아침에 과일 깎아놓고 기도한다고 생각하면 좀 오해가 있다. 형식이 다를 뿐이지 음식 비슷하게 차리신다.

 

송편도 만두도 다 제때 맞춰서 만들고 전도 부치고 단지 갈비찜도 올리고  칼치를 굽기도 하고 잔치상보듯이 본다고 생각하면 될것같다.

 

아침 일찍 입맛도 없고  결국은 밤에 열심히 만들어서 봉지 봉지 싸서 나누어 가져가는 일이 몇해를 반복하고 있다. 저녁에 음식만들면서 먹을 때가 맛있지 아침에는 떡이니 전이니는 별로 인것이 사실이고 밤에 그리먹었으니 아침입맛이 없는것도 당연하다.

 

우리시댁 명절도 그다지 다른 풍경은 없다.

시어머니는 윷놀이든 화투든 하자시지만 아들들은 영 반응이 시원치 않다. 시아버지도 호응이 없다. 오순도순 할 것같지만 며느리들은 입다물고 "네", "네"하면서 시키는 일하고 일도 별로 많이 시키지않는다. 후후

 

첫해 시집와서 명절보내는데 3일을 장보고 일하고  9시간을 꼬박 전 부쳤다. 식구가 많아서? 그 전들 다 로비하는데 들어갔다. 그리고 시어머니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한테까지 늘어지는 자랑 하시느라 며느리를 잡으신거다. 그때 나는 직딩이었다. 정말 죽을 노릇이었다. 친정갔는데 눈물이 난다. 시어머니왈 이거 다 샀으면 10만원도 넘는다 신다. 그당시 내 인권비, 시간당 만원 넘었다.

 

뭔지는 알것 같다. 딸 없는 집 . 딸이랑 장도 보고 일도 같이 하면서 내내 수다떠고 웃는 거 부러웠을 것이고 텔레비젼보면 며느리들이 일착착 하면서 잘보이려고 애교 떠는게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소고기만 3근을 갈았다. 전종류가 9가지, 전집하느줄 알았다. 로비로 들어갈거니 얼마나 이쁘게 해야했겠는가. 대치동 뭐 전집 수준으로 하려고 애도 많이 쓰셨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셨다. 내가 유쾌할 리없었다. 철 모르는 27살짜리에게 그 추석은 너무 버거운 거였고. 나는 자연 말도 없어지고 표정도 나빠졌다. 그러니 말씀하신다. 자신은 아들키울때 어땠고 작은 어머니는 아무리 일시켜도 웃으며 하고 누구네집 며느리가 어쩌고 내또래 없다. 다 40대 넘어선 분들 이야기를 하신다.

 

 9시간 일한거 보다 9시간 그 소리 들으면서 견딘게 더 지겨웠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한테 말했다.

"당신 어머니 너무한거 아냐?"

"당신 어머니가 뭐야? 우리엄마가 좀 심하긴 하지만 너 말을 그렇게 하냐 그럴 수도 있지"

 

수고 했다는 말한 마디가 없다. 그일로 대판 싸웠고 결국 사네 안사네 말까지 나왔다.

친정엄마가 열받아서 시어머니한테 따졌다. 일도 왠간히 시키지 애 잡을 일 있냐고. 막 결혼해서 적응도 못한 애한테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사실 우리엄마도 극성은 극성이다.

마마걸로 친구사이에서는 좀 유명 했었다.

 

일이 그쯤 번지고 마니 시어머니도 아차 싶으셨는지 다음부터는 그정도는 안하셨다. 뭐 시아버지가 다음해에 퇴직하셔서 그런것도 있다.

 

그러더니 작년 시동생 결혼시키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 다음 해는 동서도 들어오니 재대로 차리자고 ......결혼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말이 많았던지라 앙심을 품으신거다. 하여간 결혼만 해봐라 두고 보자신다. 나는 한껏 말렸다. 동서마저 내꼴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분란없이 조용하게 넘어가는게 내 원이었다.  내가 말리고 말렸다.

 

결혼해서 자리잡고 편해지면 조금씩 늘리는게 좋겠다고, 첨인데 적응도 못 한 애한테 부담주지 말자고 대신 내가 더 하겠다고.

 

다행이 늘 하시던 수준을 유지 하셨고, 부담 안주기로 하셨느지 준비도 미리 해놓으시고 문제없이 넘어갔다. 

 

시어머니는 음식끝내놓고  함께  놀자신다. 놀래방 가자, 고스돕 치자, 윷놀이 하자...

 

다들 시큰둥하다.  결국 텔레비젼 조금 같이보다가 남편은 남편 치구 만나러 도련님 내외는 자기 집으로  나는 내 친구 만나러 가버렸다.(남편 친구같이만나러 간다고 하고서..난 시어머니랑 둘이 있으면 진짜 괴롭다.)

 

다정하고 웃으면서 행복한 추석 그런거는 별로 없는것 같다. 싸우지만 않으면 난 족하다.

 

그런데 텔레비젼 드라마에서는 진짜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보여준다. 사랑받으려고 경쟁하는 며느리들..... ㅅㅓ로의 칭찬과 행복에 겨운 추석 .

그런것들만 보여주니 위화감이 인다. 싸우고 지지고 복는 걸 보여주기보다는 좋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현실과 맞지않는 상황을 보여주면 자괴감이 생기는건 어쩌겠는가.

 

명절 전후로 많은 사고가 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만은 않다.

강압적인 시댁과 그래도 말잘듯고 착한 며느리만 잔득 보여준다. 시어머니들은 현실감을 잃는다. 엄청 못되게굴지만 않아도 자신이 굉장히 좋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처럼 안하면 나쁜년이 된다.

 

이러니 민주화가 안된다.

가정에서 비민주적인 생활을 한 아이가 자라서 비 민주적인 어른으로 자라고 대를 물린다.

 

나는 며느리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화목하고픈 시머어미도 이해는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것과 같지않음에 며느리들이 미워지는 그 심정도 안다.

 

우리나라는 가족간에 대화하는 방법을 보여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텔레비젼에는 상처를 줘도 상처받지 않는 며느리들이 가득하다. 다 지탓한다. 완전 신데렐라 슈퍼우먼 콤플렉스만을 자극한다.

   

 한번 좋았던 기억을 얘기하자면  시어머니께서 몸이 많이 피곤하셔서 명절을 한번 넘어갔다. 나는 전날 친정갔더니 오빠가 전을 부치고 있다. 언니보다 더 이쁘게 잘도 부친다. 생선도 오빠가 굽는다. 언니랑 엄마는 전이나 국등 다른 음식을 하고 있다.

 

첨부터 오빠가 집안 명절을 도운것 은 아니다. 내가 시집간고 나니 둘이 같이 일하는 모습이 엄마 눈에 보기 좋더란다.

 

나와 신랑은 다음날 일찍 시댁에 갔다. 몇일 전에 영화표를 예매 해놔서 -왕의 남자-  아침에 셀러드랑 간단한 음시만 차려서 기도하고 오후에 호텔커피숍가서 같이 차마시고 영화보고 저녁에 외식하고 시댁에 들어와서 텔레비젼보고 시어머니는 목욕가고 밤에 집에 왔다. 가족 모두 얘기도 많이 하고 오붓하고 재미있었다. 시어머니도 처음에는 영화보러 안가신다더니 막상 다녀오시고 나서 좋아라 하셨다.

 

추석이 음식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 간에 즐겁게 보내면 훨씬 좋은 추억을 남길 수있다. 음식을 줄이고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먹지도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고생하고 진 다빠져서 여유도 잃고 기분만 상하는 명절 문화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남들이 다 그러니까 그래야 한다는 식의 일방 통행적 사회 방식이 더 가족간의 단절을 낳는것은 아니가 생각이 든다.

 

단 한번 뿐이었던 좋았던 명절에 기억은 나에게 평생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