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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에게


BY 쑥부쟁이 2008-09-03

 

엄마는 나에게



엄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눈감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아이가 학원에 무단으로 결석을 해도, 남편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늦게 들어와도 때로는 수상한 흔적을 남기고 들어와도, 알지만, 모른 척 하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나도 안다. 그럴 순간이 꼭 있고 그래야 할 줄도 안다. 나름대로 많이 참고 많이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다가 나도 터뜨린다. 나는 어떤 일이 터지기 전에 그 일이 터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터져 버린 일에 대해 그 어떤 수습을 할 수 없는 일들도 세상엔 꼭 있다. 엎질러진 물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고 주워담으려 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인 일들이 부부지간에는 꼭 있다. 그렇기에 나는 수습불가인 일들이 혹시라도 나에게 우리 부부에게도 찾아올까 두려워 나는 남편에 대한 나의 촉수를 결코 무디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포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사고방식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엄마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아 싫다. 모든 여자들이 모든 마누라들이 엄마처럼 산다고 해도 그게 꼭 옳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내 남편이 만약 부부의 언약을 깨뜨리는 일을 한다면 나는 도저히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려고 나는 나 나름대로 어쩌면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그 때 가봐야 아는 것이고 일단 지금 내가 할 일은 아직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만큼 순수한 부부의 삶을 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는 말을 유난히 듣기 싫어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털어놓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나에게  어느 날 단칼에 내 말 허리를 자르고 이렇게 명령했다.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집에 와서 말하지 말 것.” 나는 학교라는 사회집단에 첫발을 들여 놓으면서 보편적인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든든하게 보유하고 있는 ‘엄마’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어이없게 상실했다.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을 들어줘야 할 세상의 가장 가까운 지원자가 되어주어야 할 그 엄마가 나에게 함구령을 내렸던 것이다. 내가 대단히 수다쟁이였던 것은 아니다. 아니, 내가 좀 수다쟁이였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제 갓 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디딘, 불안을 가슴에 안고 타인들과의 보이지 않는 부대낌 속에서 버팀목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나에게 보호자의 역할은커녕 함구령을 내렸던 그 순간에 엄마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는 내가 어떤 말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무 때나 불쑥 내 말허리를 자르고 엉뚱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한참 말하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의 얼굴에 똥물을 끼얹곤 했다. 엄마가 그런 식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개무시를 하면서 말허리를 잘라야 할 만큼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오히려 엄마라면 엄마로서는 해선 안 될 말을, 안 될 단어를 유독 나에게 아주 쉽게 툭툭 쏟아낸다.


나와 남편은 밤에 열나게 일하고 아침에 늦게까지 자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때로는 밤 열두 시까지 목청 돋궈가며 수업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 한 시가 다 되곤 한다. 그 때 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밥 먹자마자 그대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겠는가?

씻고 남편이랑 얘기도 나누고 필요한 공부도 하고 그러다 보면 새벽 서너 시가 된다. 그 때쯤이면 우린 둘다 잠이 쏟아져 비로소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신새벽 여섯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엄마는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생활패턴에 대해서는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한다. 모든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 보지 않고 참 편리하게도 독설을 퍼붓는다.


딸아이를 엄마집에서 엄마가 키워주고 있는데 나는 아이를 주말에 집에 데리고 왔다가 일요일 밤에 다시 엄마집에 데려다 준다. 그곳에서 아이는 학교를 다닌다. 지난 주에 언제쯤 아이를 엄마집에 데려다 주러 갔을 때 엄마가 불쑥 말한다. “평소에 여기에서는 밤 아홉 시면 꼬박꼬박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곱 시면 눈을 뜨는 아이가 너네 집에 갔다 오기만 하면 ‘더러운’ 버릇을 한다”고. 그 ‘더러운 버릇’이란 다름 아닌 밤 열한 시가 되어도 아이가 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는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더러운’에 힘을 주어 말했었다.


‘더러운 버릇’이라...

엄마는 내가 사다 주는 옷은 다 수준이 낮고 볼품없는 것처럼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옷을 사다주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사다주는 과일은 잘못 고른 거라 했다. 맛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 입에는 맛있는 것을 엄마에게 사다주려고 하다가도 머뭇거리게 되었었다. 엄마는 아이가 주말에 우리집에 왔다 가기만 하면 무슨 탈이 났다고 했다. 그럼 엄마네 집에서는 아이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가?


아이의 부정적인 부분은 전부 다 내 탓이고 우리집에 머물다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똑같은 일에 대해 나와 관련된 일은 전부 다 폄하하는 것이 엄마의 나를 대하는 시종일관의 태도였다. 오늘 일만 해도 그랬다. 아홉 살이 된 아이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이가 여기 와서 이혼하겠다고 해놓고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것 봐라. 그렇게 큰소리 치고 땅땅거릴 만큼 말처럼 되는 것이 아닌게 부부지간이다.”라는 말을 엄마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아이는 우리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 아이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영리하다. 외할머니가 지금 누구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속이 깊어 자기가 그것을 새겨듣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 나는 그 아이의 엄마라서 그 아이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엄마가 내뱉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내 남편이 나와 살기 싫어 이혼하고 싶어했지만 아이가 있기에 죽지 못해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다, 정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끔 들렸다.


엄마, 엄마는 그 때 울랑이 나랑 이혼하겠다고 엄마 앞에서 말했던 그 일이 정말 울랑이 나와 살기 싫거나 내가 싫어서일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래서 내가 죽도록 비참한 기분을 느끼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지? 그거 아닌데...

나, 엄마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이 지금껏 나에게 임의로 강요해왔던, 병신 캐릭터, 사실은 아니었거든?  나 뚱뚱하고 못생겼고 속에 있는 말 당당하게 당사자 앞에서 터뜨리지 못하는 쑥맥같은 성격 맞지만 그렇다고 식구들한테까지 그것도 나를 뱃속에 넣고 키워준 엄마한테까지 개무시를 당할 만큼 한심한 인간 아니었거든?

하긴 상견례 자리에서조차 집안의 골칫덩어리 하나 남의 집에 떠넘긴다는 식으로 처신해서 시집 사람들한테 더욱 개무시 당하게 만들어놓았던 엄마랑 아빠, 참 대단하십니다. 선생이 된 언니와 동생은 그 어떤 놈이 와서 데려 간다고 해도 아까워 미칠 것 같은 처신을 보여주었으면서 내가 울랑을 인사시키려고 엄마한테 데리고 갔을 때 엄마는 그 어떤 놈이라도 이 잡것을 치워주기만 하면 감지덕지 하겠다는 저자세를 보여주었지.


엄마, 울랑이 그 때 나하고 이혼하겠다고 한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자기랑 내가 계속 살다가는 ‘나’라는 착한 인간 하나 버려놓을 것 같다고. 자기네집 야비한 식구들 등쌀에 순둥이 하나 홧병으로 병신 만들것 같다고. 마누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집 인간들 등쌀에 미쳐가는 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자기랑 살고 있는 한, 마누라는 그 고통 속에 계속 허우적거려야 되니 차라리 갈라서서 맘고생 하지 말고 살자고...


아직까지는 울랑이 나 참 소중히 대해주거든? 엄마, 엄마 생각처럼 울랑이 나랑 억지로 살아주는 거 아니거든?


엄마, 내가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싸구려처럼 느껴져? 엄마한테 나는 왜 그렇게 흉물꺼리야? 내가 공부를 못했어, 내가 엄마한테 다른 형제들보다 돈을 더 타갔어? 내가 지금 엄마 등골을 파먹길 해? 대학 갈 때도 내가 재수를 하길 했어, 내가 하숙시켜달라고 조르길 했어, 임신한 사람이 약을 잘못 먹어 완전 뚱뚱하고 못생기게 나 낳았다고 엄마 원망을 대놓고 하길 했어?

내가 엄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 엄마, 정말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 엄마는 그 지독한 독설로 나에게 많은 충고를 하지만 정작, 엄마 자신에 대해 단 한번만이라도 정직하게 돌아본 적 있기나 해? 엄마가 언제 단 한번 어린 시절 그 숱한 기억들 속에 엄마가 단 한번 내 손 따뜻하게 잡아주면서 포근히 한번 안아준 적 있어? 넷째는 시집을 가서도 엄마한테 엉겨붙어 엄마몸을 만지작거려도 엄마 전혀 개의치 않더라. 하지만 엄마는 내가 엄마 옆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잖아... 그러면서도 내 분신인 내 아이는 그토록 살뜰히 돌봐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지.


까만 옛날 어느 한 순간 막내가 내 눈에 장난감 화살을 쏘았을 때도 엄만 내 눈깔 하나 병신 되는 일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대단한 양반이었지. 그런 순간엔 불알 찬 아들놈이 아무리 귀해도 화살 맞은 딸아이한테 형식적으로라도 “너 괜찮니?”라는 말 한 마디쯤은 건네줘야 그게 낳은 자로서의 당연한 처신이야. 엄마 그 때 비록 장난감 화살이었지만 눈에 맞고 충혈된 상태로 울고 있는 나한테 뭐라고 했어? “넌 하필 왜 거기 서 있었니.”라고 했었지. 그래, 그랬었지. 나란 인간은 엄마에게 그것밖엔 안 되는 존재였지. 엄마, 언젠가 사춘기 시절에 엄마한테 미치도록 외쳤던 말 기억나? 엄마, 왜 날 낳았냐고...


엄마가 나에게 김치를 담가주고 엄마가 나의 아이를 키워주고 있고 엄마가 오늘처럼 감자부침을 해서 먹으러 오라고 하는, 엄마가 나에게 선심 쓰듯 베풀어 주는 그 모든 친절이, 엄마의 오래되고 꽤나 지독한, 나에 대한,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지독한 개무시를 상쇄할 순 없다.


먹고 살기 위한 엄마와 나와의 서로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내 아이는 여전히 엄마손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엄마와 나와의 사이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던 보일듯 말듯 가늘디 가늘게 그나마 걸쳐져 있던 인연의 끈도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끊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 이 순간처럼 입에 거품 물고 미친년처럼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이 따위 독설을 쏟아놓고 있는 나를 보면 그래도 한 때는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라는 기억의 희미한 흔적 때문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그들과의 부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삶의 어느 순간에 또 다시 거품 물고 이 따위 독설을 쏟아놓을 일이 앞으로도 또 있겠지만, 나는 오늘도 주문을 왼다.

‘엄마’라는 이름의 아주 특별하고 친절한 이웃을 잘 만나 내 아이를 맡겨 키우고 있다고. 절대로 보육비 드리는 날짜를 단 하루도 어겨서는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