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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과 칼자루


BY 바이올렛 2009-03-28

칼날과 칼자루


역시 칼자루를 손에 든 시금치들은 근엄하고 고요하다.

명절 무렵이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 안타까이 부여잡고 붉은 선혈 뚝뚝 흘리며 어떻게 하면 피를 덜 흘릴까 고민하는 가련한, 칼날을 잡고 선 이 땅의 숱한 여인네들...

그 칼날을 그냥 놓아버려도 될 일이건만 아무도 못하게 감금하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오랜 세월 철저히 세뇌 당해 뇌리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복종에의 강요가 그네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칼날을 잡고 있는 자가 없을 때 칼자루를 어떻게 휘두르든지 피흘림은 없다.


혹자들은 말한다. 세월이 더 가야 서서히 달라질 일이라고. 칼자루를 쥔 자들도 우리의 아버지고 오빠고 남동생이라고...세월은 이미 흘러갈 대로 흘러갔다. 이 문제는 세월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인식의 전환과 직접 맞닿아 있다. 우주관이 달라졌고 패러다임이 수차례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 현대에 와서도 몇 세기 전의 악습이 구태의연하게 현실에서 판을 치고 있는 이 나라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몇몇 제도와 인습은 결코 달라질 기미가 없어보인다.


왜 그럴까?


세계 어떤 역사의 현장에서도 기득권을 쥔 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악습을 스스로 깨쳐나간 일은 드물다. 여자의 일생과 시금치 제도와의 구조 속에서도 , 이것이 비인간적이고 철저히 편협하며 어이를 상실한 악습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고는 있으나 기득권을 쥔 시금치들이 스스로 나서서,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그 좋은 제도와 문화를 포기하거나 개선할 리는 없는 것이다.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고통 당하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깨쳐나가도 힘겨울 판에 어찌된 일인지 이 제도와 문화의 영역 안에서의 당사자들은 서서히 그 악습의 패러다임 속으로 함몰하기를 자청한다. 그것도 ‘기꺼이’...

아버지고 오빠고 남동생이면 딸과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을 아끼고 사랑해 줘야 마땅한 일이지 그 위에 군림하면서 종처럼 부리고 속박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던가?


아니다. 칼자루를 쥔 자들은 비단 그 남정네들이 아니다. 이 문제의 근원적 핵심 속에는 여자를 자신의 보다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위한 수단쯤으로 치부하며 살아도 된다고 은연중에 가르치고 키운 아주 끈질긴 악습의 사슬을 끊임없이 이어온, 아들들의 어머니들이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공자는 이미 죽었고 공자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적용하지 못한 후세인들의 과오가 클 뿐, 공자는 그 시대 나름의 훌륭한 철학자였다.


아니다... 이 나라 아들들의 어머니가 변해야 이 나라엔 새로운 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