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86

완벽을 추구하되 집착하진 말자!


BY 미개인 2014-05-21

완벽함은 목표일 뿐,결과는 오직 불완전함이다. 

      --아이버 커틀러--

 

완벽하게 살아야겠다며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하는 말이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말할 것이다.

아니 ,왜 깨끗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고...차라리 혼자 깨끗하련다며 피곤하게 살지만 ,결코 완벽해질 수가 없는 존재이다.

자신도 피곤하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오직 불완전만이 답이다.

완벽을 추구는 하되 지나치게 거기 집착하진 말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잔 말일 것이다.

 

나도 주제에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을 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불완전함 뿐이었고,실패였고,우울증에 빠졌더랬다.

그러다 불완전함을 깨닫고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고 나선 회복을 했다.

그러고나서 하나씩 길을 찾아내게 됐고,그런대로 행복하단 느낌까지 갖게 됐으니...

그러나 아직은 비겁하게 현실과 타협을 하고 싶진 않이서 ,꼿꼿한 면은 남아있다보니 ...

친일 매국노를 척결해내고 말리라며 1년 가까이 1인 시위 중이고,최근엔 불합리한 대학병원의 만행에 가까운 관행과 투쟁 중이다.

일본의 역사를 왜곡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만행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나라의 친일 매국노 세력들이 거짓말과 사기 등의 추잡한 짓으로 민중들을 호도하는 것에 저항을 하고는 있지만,

반드시 물리쳐내리란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니...

불완전하나마 저들의 추행을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만족할 것이다.

대형병원을 상대로 소송 등을 하며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짓이란 걸 모르진 않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의 불의를 묵과하지 않고 투쟁을 함으로써 포기하지 말고 환자들의 권리를 찾자고 외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주둥이로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킬 것을 맹세하곤 의술을 상술로 오염시키고 만 저들의 기고만장을 고발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환자들을 권리자가 아닌 도구쯤으로 여기고 쓰다가 소용이 닿지 않으면 내팽개치고 마는 저들의 추태를 가능한 한 널리 알려갈 것이다.

단국대 치대병원은 입구의 현수막에'믿음과 신뢰로 보답하는 단대치대병원'이라고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외쳐주리라.

불완전하기 그지 없는 비루한 존재인 내가 이룰 성과라는 것도 보잘것없는 것이 되고 말 수는 있겠으나 ,

할 수 있는 데까지 추구해서 불완전하나마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갈 것이다.

미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재단사인 로자 파크스가 버스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행위를 한 것만으로도 

미국의 인종차별과 여권신장이란 역사를 이룬 것을 우리는 보고 있잖은가 말이다.

왜  내가 세금 내고,내가 돈을 내고도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며 눈치나 살피며 저들의 불의에 동의해야 한단 말인가?

 

병원 입구에 화물차를 세워두고,거기에 피켓들을 주욱 걸어두고,1인시위중이다.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지 실습이나 시험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피켓으로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잘 안 되면 받은 돈 중 얼마간을 주고 내팽개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들이라니...

그러다 내가 반발해서 시위를 시작하니 타협하자고 대드는데,만약에 내가 반발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

왜 빨리 계좌번호 안 불러주느냐며 짜증을 내고 거지 동냥하듯 툭 던져주고 말았을 저들이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가 그지없다.

합의보류 의사를 밝히자 이젠 거짓말로 모든 책임을 환자인 나에게 뒤집어 씌우는 저들의 작태라니...

내가 이 사실을 SNS에 올리니 많은 사람들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요 뭐~하면서 잘 해보라고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리 소극적이고 ,피동적이고 비겁한 존재들이 됐을까?

진 샤프란 사람이 '비폭력 운동의 정치학'이란 책에서,'권력은 그 권력에 탄압받는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향유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저들의 오만방자를 보고도 ,부정부패를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고 묵인하는 것은 동의에 다름 아니다.

그래놓고 저들을 비판만 하며 자신들은 여전히 동의를 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완벽하려 기를 쓰지는 말되 ,얼마간 나약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수양버들이 잘 부러지지 않는 것처럼 살고 싶어졌다.

마침 오늘  알랭 드 보통 주도의 '인생학교' 세상편을 시위현장에서 다 읽었다.

거기서 저자 존 폴 플린토프는, 하루를 살더라도 세상을 바람직한 쪽으로 변화하게 하는 데 기여하며 살자고 외친다.

살아지는대로 살지 말고 ,스스로 주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야 말겠단 의지를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라고 외친다.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하루하루의 삶 자체를 그런 행위일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을 알려주고,직접 나서는 방법까지 일러주는데...

지금의 나의 삶이 좀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 말고는 그닥 잘못된 것이 아님을 믿게 해줬다.

좀 더 부드러워지고,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되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하고,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파급효과까지 생각하며 행동한다면,

우리는 인류발전에 기여한 간디나 진 샤프,그리고 흑인차별에 저항한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재단사 로자 파크스처럼 될 수도 있다.

당장 불편하고 불안하고 두렵다고 불의를 보고도 묵과하는 것은 그 불의를 용인하고,스스로 굴복하는 행위이며 부추기는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결국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명언도 짚어본 일이 있듯이,

우리들이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고 부정부패를 방관하며 정치적 무관심을 견지하는 동안 우리의 정치현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왔다.

완벽주의자는 꺾이고 말 수 있지만,이상주의자는 휠지언정 꺾이진 않을 수 있다.

호랑이를 그리겠다고 대들면 적어도 고양이는 그릴 수 있지만,애초 고양이를 그리려고 마음 먹었던 사람은 정체불명의 쥐새끼를 그리고 말지도 모른다.

우주의 축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들 인간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하루빨리 회복하여 

불완전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들의 집합인 인류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인본주의라고 해석되는 휴머니즘만이 답이다.

슈퍼갑들의 오만방자에 더 이상은 농락당하지 말고 ,우리들 개개인이 슈퍼갑으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대통령도,재벌도,대형병원 등의 슈퍼갑들도 결국은 우리들 민중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란 걸 세계사는 증명해보이고 있잖은가 말이다.

이제 그만 노예근성을 떨쳐버리고 주인으로서 꿋꿋이 서가야 할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하는데도 절레절레 도리질부터 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뭥미?


http://blog.daum.net/migaei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