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1877~1962) 독일.시인.소설가.
그는 주로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찾기 위해 문명의 기존 양식들을 벗어나 인간성을 다루고 있다.
자기 인식을 호소하고 동양의 신비주의를 찬양했으며,사후,영어권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기도 한 그는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양에 선교사로 있는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으로 마울브론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적응을 못했고,시계공장 견습생을 거쳐 서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갑갑한 전통학교에 대한 그의 혐오는 지나치게 근면한 학생이 자기 파멸에 이르는 내용의 소설,'수레바퀴 밑에서'에 잘 나타나 있다.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1904년 자유기고가가 돼 '페터 카멘친트'라는 첫 소설을 발표한 이후 '로스할데','게르투르트' 등의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내면과 외면의 탐구를 지속했고,그것을 서정소설 '싯다르타' 로 표현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스위스에 살면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배격하고,독일의 전쟁 포로들과 수용자들을 위한 잡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1919년 스위스의 영주권을 얻게 되고 몬타뇰라에 정착해서 칼 융과 그의 제자인 J.B.랑을 알게 되고 공동작업도 하게 됐다.
당시 연구한 정신분석의 영향으로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을 내게 된다.
그의 후기 활동은 인간 본성의 이중성에 몰두하게 됐고,'황야의 이리','지와 사랑','유리알 유희'를 발표했다.(브리태니커)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심지어는 증오하기까지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걸까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헤르만 헤세의 저 말을 보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나는 명언들을 주워다 임시저장함에 쌓아두고 그 때 그때 눈길을 사로잡는 걸 다루곤 하는데,
3년여 전에 위의 명언을 본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었지만,당시엔 제목을 '미움'이라고 붙였더랬는데,오늘은 '자중자애'라고 붙이고 다시 한 번 다뤄 본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안에 이렇게나 상반된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당시 기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사물현상을 보는지도 깨닫게 돼서 ,좋은 자극제도 되는 것 같아,정말 좋다.
여튼 나는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반가워하기보단 미워하고 증오했던 적도 있었고,
치열하게 앞만 보고 치달려야 하는 궤도를 벗어나 얼마간 여유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반면교사로 삼게 되고,그들을 돕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혼을 하고 아이들과 떨어져 있게 되면서 ,두 딸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을 모를 거라 생각하겠지만,우리들 사이엔 어쩔 수 없이 같은 피가 흐르고 있고,흡사한 DNA를 갖고 있게 됐다.
내가 한 바보같은 실수를 너희들도 십중팔구 반복하게 될텐데,너희들이 당장 나를 미워하면서도 똑같은 일을 하며 살게 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 등을 보면서 ,미리미리 너희들의 삶을 시뮬레이션 해 보고 ,막상 닥쳤을 때 현명하게 극복해주면 좋겠다라고...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식겁하게 된 것이...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집안 사정을 살핀답시고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진출한 것이며,
녀석들의 첫 직장이 30여 년 전에 내가 다니던 그 직장이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녀석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CCTV처럼 주욱 펼쳐지는 게...내가 좀 더 잘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미 과거지사.이제부터라도 지금의 나처럼 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게 됐다.
30여 년이 흐르면 녀석들이 지금의 나처럼 살게 될 확률이 아주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30년,40년 전의 나의 아버지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난 아버지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고,그래서 아버지보단 얼마간 더 잘 살고 있지만,큰 틀에서 봤을 때 흡사하기만 하다.
나의 두 딸도 나의 삶을 미리미리 살펴 보고 ,생각을 해서 ,나보다 훨씬 바람직한 삶을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
녀석들이 읽을지 안 읽을진 모르지만,언젠가 불쑥 아비가 생각날 때 들어와서 자신들의 뿌리를 살피고 싶어졌을 때라도 보라고,참고하라고,거의 매일 일기를 쓰듯 쓴다.
나는 녀석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것이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에효~어쩔 수 없는 내 자식들이로구나~하며 피식 웃게 되지만,
녀석들은 문득문득 자신의 안에서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미워하고,아비인 나를 원망하게도 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시절을 겪었지만,잘 극복해 왔던 것처럼 녀석들도 잘 극복하고 ,나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아 큰 발전을 이루게도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녀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려 애쓸 것이다.
문득문득 게을러지고 싶고 유혹에 빠지고 싶어질 때도, 이러면 내 아이들이 나중에 나처럼 이렇게 살게 될텐데...하고 생각하며 극복해내리라.
사실 요즘 내가 쓸쓸하고 고독한 혼자만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밝고 행복하게 살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이 주효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꼭 부자이거나 출세를 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요즘 아끼던 후배 하나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내가 젊어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녔을 때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친구인데,약간의 실수가 보여 충고를 했다가 덤터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입장에선 내가 자기의 단점을 갖고 있는 게 보여서 ,전후 사정 다 젖혀두고 비난을 하고 공격을 하면서 내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 한 말을 갖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단을 해선 기정사실인 것처럼 들이밀며 공격을 하는데...헐이다!
내가 이 나이 먹어서 이런 수모까지를 당하며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처음의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지켜봐주자!
불같았던 내가 이리 변할 수 있을 거라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나를 바꿔 놓다니...참으로 세월은 최고의 명의인 듯하다.
나도 이젠 의젓한 중년이 되는 훈련을 쌓아가야겠다.
누군가가 미워서 미치겠거든 ,그 원인을 파악하고,혹시 나한텐 그런 면이 있진 않은지부터 확인해 보자.
그리고 혹시 나에게 자존감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길 ...
알량한 자존심이 아니라 ,어떤 공격을 받고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초지일관할 수 있는 자존감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볼 일이다.
더러 실수를 하고,모욕을 당한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남을 미워하는 일도 한결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수년 전처럼 자존감이고 뭐고 없을 때였다면,요즘 당하는 일을 가만 두고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이나 내세우면서 야단을 치고 ,꼰대 노릇을 하려고 발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장점은 장점대로 사랑하고 있고,아쉽다 여겨지는 단점은 극복하려 애쓰고 있으며,분수에 맞게 욕심을 줄여가고 있으니 ,
나 자신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없고,그런 나를 닮은 사람을 보면 딸들에게 그런 것처럼 피식 웃음부터 나오면서 도와주고 싶고 기다려주고 싶어진다.
박근헤 등의 친일매국노 족속들의 만행을 접하면서도 ,화만 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겐 그것들처럼 못된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고,
미워하는 동시에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결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그러다보니 진도 안 빠지고,투쟁의지는 더욱 고양돼가는 것만 같다.
하루이틀에 끝날 투쟁이 아니기에,장기레이스를 펼쳐가는 자세로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불처럼 싸우다가 얼마간 목적을 이뤘다고 생각하면 변절을 해버리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이겨왔음을 역사를 통해 보고 있잖은가?
묵묵히,끝까지 투쟁해 가되,지난 번 반민특위 해체 사건처럼 ,때가 왔을 때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두번 다시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고 본다.
정의로운 세상이 오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해야 지속가능해질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 우린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고민해 봐야 하고,존중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