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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제가 밉습니다...


BY cherryple 2002-05-18

1997년 6월 이혼후 애들을 아빠가 키우기로하구서 (추정재산 1억잡아 5분의1씩으로하여
위자료2000만원을받고 막내몫은 받지않기로 하여 합의각서를 다시적고 막내를데리고 친정으로
왔읍니다. <막내만 뇌성마비에 애들셋은 벅차다며 위자료 2000만원을 받아가니막내도
데려가라하여 본인은 애도 불쌍하고 본인의 몸도 않좋아 더이상 애아빠에게 시달리기 싫어
데려왔음>
애아빠는 여자와 동거 1년후 여자의 가출로 재결합하자고 와서는 빌더니 마음이 바껴
다른여자와 두달도 안되어 결혼식을 올렸고 본인은 막내의 몫 2000만원을 요구하자 데려가
잘 키우겠다며 결혼한 여자와 상의하여 막내를 아빠에게로 보냈읍니다 .그때 친권 양육권
변경신고를 아빠쪽으로 바꿨죠.
아빠에게로 간 막내는 두달정도 가족과 살다가 민락동 시댁으로 보내졌답니다 .
새여자와 결혼후 1년정도 지나 여자가 가출을하자 애아빠는 본인에게 연락해 애들을 키우게
해주겠다했고 본인은 가정부라도 데리고 여자를 기다려 다시 잘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
그러나 애아빠는 계속연락을 하며 애들을 본인이 맏아주길 원하며 동정을 구하듯이 애들
이야기를 했고 만약 본인이 애들을 맏아주지않는다면 있는재산 다 팔아 외국에라도 보낸다
하더군요 .
본인도 애들을 떼놓고 괴로웠기에 애들아빠와 약속을 하고 애들을 데려왔죠.
데려오기전에 합의각서를 적어달라고 했죠 .애아빠는 그럴필요 없다며 여자들에게 질렸고 애들을
엄마에게 보내는게 아빠로서 마지막 도리라며 양육비와 방얻을 돈을 해 주겠다며 믿으라며
말했죠 본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의각서를 본인이 적어 내용을 보여주며 도장찍어 달라고
했죠 .
<방얻을돋 2000만원은 집이팔리는데로 주고 월80만원씩양육비로 주기로 했죠그리고 서로의
사생활 침해않기로 하고 애들 은 언제든지 만나도 좋다라고 말이죠.
그당시 또여자를 사귀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애아빠는 본인이 적은 합의각서를 읽어보고는 도장을 찍어줬고 친권 영육권 변경 신고도
본인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도장을 애아빠한테 받았죠 .
애아빠는 한동안 양육비를 보내어 주었고 그러다 핸드폰 번호도 바껴버렸고 행방을 알수가
없자 시댁에 전화해 물어보았지만 내몰라라 했었죠.
저는 영세민신청을 하여 생활급여를 받으며 생활했고 애아빠의소유로된 반여동 15평 정도되는
집을 가압류 했어요.
그러자 애아빠는 큰애 둘만데려가겠다고 몇번을 ?아와 본인과 다투었고 심지어 팔아주겠다던
집마저 팔아버리고 갤로퍼 차까지 팔아 아버지명의로 차를 삿나봅니다.
시어른들까지 나서서 애들을 보내라고 했고 본인은 애아빠와 다투어 상방폭행으로 부산
진경찰서에가서 조사를 받았고, 시댁어른들과 애아빠는 애아빠인데 잡아넣으려 했다며 더이상
애들을 맏길수 없다며 친권 양육권 변경신고서를 위조작성했다며 본인을 고소 했습니다 .
경찰서에서 조사중 본인의 말이 신빙성이없다며 목도장을 본인이 파서 찍어 신고를 했다고
시인하라고 했고 심지어 본인 의 오빠에게까지 형사는 전화해서 유도심문을 하였습니다 .
본인은 애들 아빠를 만나 합의각서를 읽어보게 한후 도장을 받았고 친권 양육권 신고도
하겠다고물어 신고를 했으며 애아빠의 본적지의 면사무소에서 직원의 확인차 전화가 "친권 ,
양육권 합의각서에 동의했냐"는 전화를 받았고 그당시 애아빠도 동의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애아빠가 본인에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진경찰서에 1차 조사때 조사받으며 일기형식으로 년도별로 적어서 서류를 제출하였었습니다.
2차 조사를 받으러 갔을때 검찰에서 도장찍은것에 미심쩍다며 재조사를 하라고했다며 애아빠와
다시 대질 조사를 하더군요 .
김현진 형사님은 분면 제가 1차 제출한 서류를 읽어 보았을터인데 다시 친권 양육권 변경신고서
에대해 작성한 서류 출처와 작성인 날짜를 묻더군요 잠시 제가 헤깔렸었습니다.
애아빠에게 도장받은날을 4월 29일인데 제가 친권 양육권 변경신고서를 가지고 다니다 바로
보내지 않고 며칠가지고있다가 일반 우편으로 보낸것이 도장받은날과 헤깔렸는지 5월5일
애아빠와 애들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오고서 몇번을 만나면서 도장을받았을거라 며 본인이
잘못진술을 하게되었습니다.
김현진 형사님이 친궝 양육권 변경신고서는 어디서 구했냐길래 부산 진구청이라하였고 궂이
본인의 오빠가 진구청에 있다고 말할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구청직원이 한부를 적어주고 본인이
한부를 적었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애아빠가 진구청에 본인의 오빠가 있다며 오빠와 짜고 위조했다며 말을하자 김현진
형사가 다시본인에게 묻기에 오빠가 진구청에 근무를 하며 애아빠가 친권 양육권 변경신고를
본인에게신고 하라 했었고 그리고 그당시 애아빠는 전라도 정읍에서 기거하며 전라도 정읍의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상태라 일일이 올라오라고 할수도 없었고 신고서 승낙이 있었기에,
그리고 본인이2000년4월29일 작성한 서류에도 변경을 하겠다고 했기때문에 적어서 애아빠를
만나 도장을 받았던 겄입니다.
김현진형사는 본인의말에 신빙성이 없다며 애아빠는 도장찍어준일이 없다는데 왜 부인하냐며
진구청에 근무하는 본인 오빠가 적어준겄부터가 거짓말이 들어나고 도장받았다고 하는 날짜도
다르다며 본인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솔직히 말하라더군요. 그리고 본인오빠에게 전화를걸어
유도 질문을하더군요....옆에서 ??資結隻?애아빠가 가증스럽고 어쩜저럴수가있나싶어
죽이고 싶을정도로 괴씸하여 또 싸웠습니다.
억울하고 ,괘씸하고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고 숨이 막혀오더군요
그리고는 어디서 도장을 팟냐고 형사님이 묻더군요 .길에서 팟냐고 묻길래 그랬다고 ,
어디서 전포동이냐 아니면 서면이냐고 묻기에 전포동이나 서면이나 어디겠지요라고 답했고
본인이 거짓말을 했냐고 묻기에 그랬다고 이미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김현진 형사와
애아빠에게 오기가나며 애들을 보내야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
거짓말을 하는 애아빠의 말은 신빙성이 있고 본인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다는 형사님이
야속해지더군요...
저는 그렇습니다.
서류한부는 오빠에게 적어달라고 했었고 한부는 제가 적었지만 분면히 도장은 애아빠가
찍었습니다.
애아빠가 분명히 합의각서 서류를 읽어봤고 그리고 저에게 변경신고를 하라했었고 분명
읽어보고 도장을 받은것입니다.
그리고 애들을 데리고 왔으며 본인은 애절한심정입니다 .애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애아빠의 외도와 폭행 폭언으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들어
애들을 포기하고 이혼까지 했었지만 애들을 데려올땐 정말 애아빠를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명절때마다 애아빠가 애들을 데리러 오지 않아도 아빠이기에 시댁으로 보냈었고
애들이 아빠와살때 본인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괴로움을 알기에 애들도 만나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애아빠는 만나는 여자가 있었고 집나간 여자와 이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들이
본인에게 왔기에 당연히 아빠도 받아들일거라 생각했나봅니다.
애아빠의 생각대로 되지않자 본인에게 남자가 있어 그런다며 애들 앞세워 돈뜯어 내려는
속셈이라며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급여까지 받아내야한다며 본인을 악질이라고 하며
애3명을 다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저는 애들을 떼어놓고 하루도 편하게 살아오지 못했었습니다.애들 없이 사는 삶이 무의미해서
죽어버리려고도 했었으나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쉽게 내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저는 지금 많이 힘듭니다.
굳이 애아빠가 괴롭히지 않아도 지나간 악몽같은 세월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애들에게도 미안합니다.여느가정처럼 평범하게도 사는것도 원하는것도 다 들어줄수가 없었고
또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맘편히 살아본일이 없었습니다.
애들 없이 직장도 다녀봤지만 의미가 없었고 못다한 공부도 하려했지만 애들을 대신해주진
않았었습니다.
애아빠의 말대로 하자면 저는 가정파괴범이며,위조범이며 ,바람이 나서 애들을 버리고 도망간
여자라고 합니다.
저의 친정어머니께서는 80세 이십니다.
오빠와 살으시다 제가 이혼하고 오면서부터 서로 의지삼아 계셨다가시기도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애들 이 본인에게 온것만도 소원풀이했다치고 애아빠와 다투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의 어머니는 부전시장에서 노점을 하며 하루하루 벌어 생활에 보탬이되라고 도와주십니다.
저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급여 60만원 정도를 받으며 어머니의 도움으로 애들셋과 살고
있습니다.
막내의 계속적인 물리치료와 저도 몸이 아파 막내 낳고부터 산후후휴증과 신경성으로 병원
치료를 받으며 지냅고 있습니다.
조건부로 일을해서 소득신고를 해야하는데 저는몸이아파 일을 할 입장이되지못해 양육비소송이 정리되면 애들과 저의 정서 안정이 ?아지면 일도 할수 있을거라 희망하며 버텨왔는데 정말 힘이 듭니다.
우리 어머니께도 오빠 형제들 보기에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는 애들 엄마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제가 두살때 돌아가시고 저는 아버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애들아빠와 살아보려 몇번을 재결합했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습니다.
제대로 친정한번 갈수없었고 시댁과, 콩나물값까지 깍으며 가계부정리하여 다닌 시장과
친정줄이쎄다며 시어머니의굿치레와...그런것들만이결혼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가난한친정,늙은친정노모의 초촐한사위대접에대한 설움, 어려운형편에 치뤄준늙은 노모에 대한
보답을 이렇게 밖에 할수없는 자신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꼭애아빠와싸우며 설움당하면서까지 같이살아야 애들이 잘큰다는 보장도 없으며 저의 어머니도
홀로 저를힘들게나마 버리지 않고 키워 주셨기에 저도 애들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보려 했었습니다.
뭐가 정말 법인가요?....어떤게 진실인가요?....
정말이지 눈물로서 이글을 적어 봅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옵니다...
엄마의 희망이 정말 무어라 생각하십까...........
삶이란게 무언지 ..왜살아야 하는지...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