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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살아도...


BY 로미 2002-10-31

아주 넉넉하게 살아온것은 아니지만 이정도까지의 어려움엔 처해본적없이 살아오다가 가난에 직면하게되었다.
그래도 근면하고 자상한 남편이 있고 귀여운 아들녀석이 있다는것이 유일한 행복이랄까.
언젠가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돈없는 걱정이 가장 행복한 걱정이라 카더라... 좀만 참아라. 살기가 더 수월해지지 않겠나..."
그 말씀을 들은 이후 정말 나는 돈문제로 힘들때면 늘 그 생각을 해본다. 돈이 많다고 해도 이런 가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건강이 없다면 무슨소용일까... 하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우리는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네 식구가 빌라 반지하에 월세로 살고있다.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채광도 되질 않아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곳이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자꾸 이상한 우편물이 왔다. 나는 주인댁 우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주인댁은 바로 앞 빌라다) 늘 우편물을 어디에 전할지 몰라 우편함 위에 놔두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히 아기가 우편물 하나를 뜯는 바람에 읽어보니
빚독촉장이었다.
지금 우리가 월세로 들어온 집에 융자가 들어있는데. 계속 연체가 되었다는 내용... 그래서 다른 것도 뜯어보니 모두 그런 내용이었다. 카드 연체거나 은행 대출금등...

어려움이 많으신가보다 걱정도 되었다가.정신을 차리고 알아보니 만약 집이 은행에 넘어가면 얼마 안되는 우리 보증금도 날아간다는것을 알 수있었다.

그날부터 한숨이 나왔다. 우리집...우리가 걸고 있는 보증금도 우린 은행에서 전세대출자금으로 구한것이다. 대형 평면텔레비전 한대 값이다.
남들이 벽에 걸어놓고 본다는 커다란 텔레비전 한대값이 우리의 삶의 터전과 같은값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나의 인생이 빈손이구나 싶고...
허무했다.
내가 가진 행복들도 잘 보이지 않고 아이를 보는 눈에 안스러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아이에게 마음껏 책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싶고. 아이와 좋은곳에 자주 놀러가고싶기도하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아이가 지나가며 가르쳐준 알파벳을 아는체 하고 수를 세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알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해도 내 자식이 했을때의 감격은 정말로 새롭다는 것을...

그날부터 나는 다시 생각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것이다.
무엇인가 잃는다면 채워질것이다.'

나는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거실에 앉아.
좋은 장난감은 없지만 이제 막 글을 깨치려하는 어린 아들과 크레파스로 희망이라는 글자를 적어보았다.